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설령 그들의 영향력의 무게를 다소 인색하게 재더라도 이제 H.O.T는 한국에서 세대를 뛰어 넘어 하나의 상징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새것을 알아야 한다는 시대의 압력에 굴복한 부모들도 H.O.T가 누군지 정도는 안다.서태지 이후 가장 강력한 대중 문화코드가 된 이들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팬클럽을 거느린 어마어마한 세력이 됐다. 96년9월 데뷔한 이들이 4번째 음반을 갖고 나왔다. 역시 한동안의 활동 중단, 그리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이돌 스타의 공식 그대로이다.
타이틀 곡 「아이야(I yah!)」(작사·작곡 유영진)는 랩과 록이 결합한 하드코어 스타일에 클래식 샘플링 등 최근 유행하는 경향을 모두 모은 뷔페식 상차림이다. 모차르트 교향곡 27번의 인트로에 보컬 부분에는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샘플링됐다. 거기에 빠른 기타 속주와 랩이 어울려 노래는 세련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씨랜드 참사에 자극받아 만들었다는 가사는 어린 아이들 조차 보호해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다.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의 불꽃을 꺼버리게 누가 허락했는가/ 언제까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고 살텐가…」. 그럼에도 노래는 어딘가 팬시상품을 닮았다. 잘 포장되고, 예쁘지만 어딘가에 가벼운 구석이 있다. 지나치게 유행을 좇은 듯, 너무 매끄럽다. 하드코어 「스타일」이지 하드코어는 아니다. 그리고 아이돌 스타의 한계를 넘으려는듯 애국적 내용의 「코리언 프라이드」「신념」 등의 곡을 삽입했다.
「전쟁」은 아이돌 스타의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곡. 노래는 없다. 그저 전쟁에 대한 생각을 멤버들이 한마디씩 이야기한다. 그냥 한담을 하듯 얘기를 담은 것이다. 「하늘, 꿈, 그리고…」는 재원의 독백이 깔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동안 H.O.T와 개인적 「접점」을 찾았던 대중은 이제 그들과 한밤중 전화 통화를 하듯, 혹은 그들의 대화를 엿듣 듯 그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이게 바로 스타다. 그들은 이제 노래 없이, 그 존재만으로 가수다. 팬들은 그래도 좋아할 것이다. 그냥 H.O.T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상징이 존재를 압도하는 대중문화시대의 단면이자 본질이다.
이제 그들은 어마어마한 경쟁 상대와 접했다. 음반판매가 단숨에 100만장에 육박하고 있는 조성모. 그러나 진짜 그들이 뛰어 넘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 혹은 「환상」일지 모른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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