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존 운동을 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내설악 꽃산행에 동행했다. 9월의 설악은 여름 휴가철과 단풍 행락철 사이에 끼여 사람들이 그렇게 몰리지 않았다. 꽃을 한가히 구경하며 걷기에는 그만이다. 장수대에서 대승폭포를 거쳐 안산(鞍山)쪽으로 가는 남설악은 주말인데도 인적이 거의 없었다. 하루에 몇십리를 주파한다거나,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에 별 관심이 없이 꽃과 나무를 구경하며 산길을 걷는 맛이란 보통 등산과는 색다른 경험이었다.■초입인 대승폭포의 암벽에 붙은 하얀 쑥부쟁이부터 안산 꼭대기 근처에 핀 함박꽃에 이르기까지 꽃천지다. 가을에도 이렇게 꽃이 많다니. 소월(素月)이 읊은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라는 시구가 그대로다. 특히 고도(高度)를 따라 하얀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금강초롱은 이곳의 명물이다. 마치 초롱이 연달아 매달린 것 같이 피는 이 토속 야생화는 슬프게도 우리 식물학의 후진성 때문에 일본인들이 자기네 이름으로 학명을 붙여버렸다.
■그런데 꽃산행을 안내한 고그림씨는 등산객들이 방향표시로 나뭇가지에 묶어놓은 나일론 리본을 보이는 대로 풀어 배낭에 담는 것이었다. 설악산이 좋아 속초에 산다는 고씨는 설악산의 산양에 매료되어 배낭에 산양똥을 담고 다니는 자연운동가였다. 그는 『등산로가 널찍이 뚫렸는데 산악회마다 리본을 나뭇가지에 묶어놓아 원시성을 파괴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리본으로 가득찬 배낭을 메고 하산했다.
■서울의 북한산에서 남의 한라산까지 어느 산이건 등산로 나뭇가지에는 서낭당의 헝겊처럼 리본이 매달려 있다. 리본에 오래 묶인 가지는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자란다. 쓰레기 주머니를 들고 다니며 오염을 막을 정도로 우리 등산객들의 수준은 높다.
그러나 리본이 길 안내보다 공해가 된 줄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산악회는 리본을 달지 말고 떼면서 다니자. 내년엔 리본이 없고 금강초롱만 더욱 소담스럽게 핀 안산을 다시 한번 걷고 싶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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