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외국인전문가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충고」중하나는, 우리 경제의 위기를 불러오는데 우리 기업들의 기형적인 구조가 큰 몫을 하였으며, 따라서 우리 기업들의 구조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회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기업들은 족벌체제 유지를 위해 주식시장을 회피하고 과다한 차입에 의존하면서 과도한 비관련 다각화를 통한 사세확장에만 몰두하고 이윤도 별로 내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기업들이라고 한다. 이 분석은 얼마나 타당한가?우리나라 기업들이 족벌체제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 주식시장을 회피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적 기준으로 볼때 우리나라 기업의 주식시장 의존도는 낮지 않다. 최근 발표된 일련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규투자 자금 동원에 있어 한국기업의 주식시장 의존도는 선진국 기업보다도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은 것은, 워낙 투자율이 높아서 선진국기업들처럼 내부유보에만 의존하여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국제적 기준으로 보아 터무니 없이 높은 것은 아니다. 세계은행이 96년 발간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80년부터 91년 사이 한국제조업체의 부채비율은 366%였는데 이것은 일본(369%) 프랑스(361%)와 유사하며 이탈리아(307%)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핀란드(492%) 노르웨이(538%) 스웨덴(555%) 등 북구권 국가에 비하면 별거 아닌 수준이었다. 필자의 견해로는 한국기업의 부채구조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부채비율이 높다는 것 보다는, 단기부채가 높아 채무의 안정성이 낮았다는 것이다.(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단기부채는 장기부채의 2배 이상이었는데 노르웨이나 핀란드의 경우는 그 비율이 반대였다.)
한국기업들의 효율성이 낮고 그에 따라 이윤율이 낮다는 주장은 어떠한가? 첫번째로 지적할 것은, 이윤율이라는 것은 기업의 효율성이나 그 사회적 공헌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지표이며, 따라서 이윤율이 낮다고 꼭 그기업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회계 관행이나 세제의 차이 때문에 이윤율의 국제비교에는 문제가 많고, 이윤율의 개념도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비교방법에 따라 한국기업의 이윤율은 국제적으로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그리고 설사 한국기업의 이윤율이 낮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채의존이 높아 금융비용이 크기 때문이지 기업 자체의 효율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한국재벌이 지나치게 비관련 다각화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재벌의 경우 2∼4개의 주력기업이 매출액의 70∼90%를 출하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다각화 정도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높지 않다. 물론 재벌들의 백화점식 경영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비관련 다각화 자체를 죄악시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수요변동이 심한 일부 중화학공업에 주력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비관련 다각화는 위험 분산의 차원에서 필요한 전략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기업들이 기형적이라는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 특히 비영미계(非英美系) 선진국들의 기업들은 오히려 우리나라 기업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고려할 때, 영미계통의 분석가들이 자기 나라 기업들만을 기준으로 하여 내놓은 「한국기업 기형론」을 따라 우리 기업 구조를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한국기업들이 고칠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치려면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알고 고쳐야 할 것이다./장하준 영국케임브리지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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