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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양녕대군 유일한 글씨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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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양녕대군 유일한 글씨 발견

입력
1999.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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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명필이자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의 유일한 글씨가 발견됐다.고서수집가인 김인기(金寅起·61·전북 익산시 모현동)씨는 8일 양녕대군이 소동파의 한시 「후적벽부(後赤壁賦)」 전체를 적은 목판본을 공개했다.

목판본은 각각 가로 45㎝, 세로 117㎝ 크기의 한지 8장으로 이루어졌다. 글씨는 초서의 일종인 광초(狂草)로 날아가는 듯 흘려 쓴 글씨체다. 김씨는 이 목판본을 알고 지내던 원광(圓光)스님으로부터 10여년 전 전해받았다.

목판본 마지막 장에는 「… 양녕대군의 글씨로 전해오는 것은 숭례문 액자 3자와 여기 새겨진 것뿐이라. 여기 새겨진 목각은 원래 지덕사(至德祠)에 간직되었는데…추성의 만봉각에서 다시 새기노라. 세재 정해구월사일」(정해년은 1587년이나 1647년으로 추정)이라고 양녕대군의 글씨임을 알리는 글귀가 씌어져 있다.

목판본을 검토한 서예가 김응현(金膺顯)씨는 『글씨는 조선초 거의 씌어진 예가 없는 광초이며 안평대군에 필적하는 명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목판 마지막 장 발문 글씨체는 300년 이전의 것으로 양녕대군의 글씨를 새긴 목판본임에 틀림없으며 글씨를 새긴 상태도 좋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원인 고려대 이동환(李東歡·한문학과)교수는 『판각본이기 때문에 가짜일 가능성은 없다』며 『조선초 거의 씌어지지 않은 광초이고 양녕대군의 유일 글씨라는 점에서 서예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남대문의 현판 글씨는 양녕대군의 작품인 것으로 전해왔으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조선초 문신인 신장(申檣·1382~1433)의 글씨라고 주장한 이후 글쓴이가 불분명한 상태다.

서사봉기자

ses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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