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왕따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한다. 이때 나는 문득 가대기의 가르침이 떠올라 눈시울부터 붉어진다. 해방 직후 13살의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온 나는 아이들로부터 여간 깔치(따돌림)를 받은 게 아니었다. 신발이 없던 나에게 그들은 맨발로 지낸다며 주어 패고, 매를 맞으면서도 뻗댄다고 무척이나 괴롭혔는데 그 가운데서도 살구라는 아이는 특히 모질었다.잘 곳이 없어 서울역앞, 지금의 양동 난민합숙소에서 잠을 자던중 이가 한마리 나왔는데 굳이 내 것이라고 우겨 결김에 한번 붙었다. 그러나 촌놈인 내가 턱이나 되겠는가. 실컫 맞다가 어떻게 배지기로 들어엎어 내가 막 이기려는 순간, 누가 어깨를 쳐 올려보니 가대기형이 아닌가.
가대기는 어깨에 짐을 져 먹고사는 막일꾼. 그렇지만 힘은 천하장사였다. 하루는 김두환 일당이 서울역전에 침입, 일꾼들에게 돈을 내라고 하다 이 가대기와 붙었는데 예상을 뒤엎고 태맹일 당했다. 이를 보고 주먹으로 나서라고들 했지만 끝내 제 노동으로 살던 그런 일꾼이었다.
그런 멋쟁이형이 말렸으니 우쭐할 수 밖에. 『형. 내가 이겼지』하고 되묻는 순간 천만 뜻밖에도 가대기형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긴 것 같아? 아니야, 임마. 싸움은 나쁜놈하고 했을때 이기고 지는 것이지 없는 놈들끼리 백날 붙어봐야 짜증밖에 더 돼?』
나는 그때 그말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뒤 이 말은 나도 모르게 가슴에 철리처럼 새겨졌다.
요즘 애들도 깔치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문제는 공연히 착한 애를 업신여기는데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청소년 비리라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왕따문제가 애들에게만 있는 것인가. 가령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얼마나 왕따하는가. 백번을 거짓말하고 천번을 나쁜 짓 해도 해먹은 사람이 장땡이요, 그들이 실제로 돈과 힘을 거머쥐고 이 착한 백성들을 얼마나 왕따하고 있는가 말이다.
때문에 어린 학생들의 깔치문제가 그런 상층구조의 청소년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보면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어린 것들이 믿고 따를만한 정의 인도 진실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 세상이란 모형은 없고 도리어 강대국을 환상적으로 그리는 일류국가론만 제시되고 있다.
이때문에 어린 학생들까지 부정한 것에 대한 분노가 왜곡되고 의로운 것에 대한 감격은 사라지고 야구장에서 축구장에서 또는 방탕, 쾌락도 멋으로 치는 환호만 있는 현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왕따요, 그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문득 싸움은 나쁜 것하고만 하는 것이라는 가대기의 말이 떠올라 다시 소년으로 돌아가는 기분, 몹시 편치 않다./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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