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만한 세계경영으로 부실재벌의 대표로 사회적 지탄과 국민적 걱정의 대상이 되어버린 대우그룹은 IMF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97년 프랑스의 가전업체인 톰슨 멀티미디어사를 인수하려 했다. 인수계약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서 프랑스정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프랑스 우파정부는 톰슨사를 민영화해도 프랑스기업에 매각할 것이란 결정을 내렸고 그 후 좌파 조스팽 정부는 아예 톰슨사를 국영기업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이와 반대로 멕시코의 경우 핵심산업과 금융은 대부분 외국자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한국도 IMF체제를 졸업하는 시점이 될 때에 대부분의 알짜배기 기업들은 외국인들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현재 우리 기업인수합병 시장은 전형적인 구매자시장(buyer's market)이다. 외국계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이 서서히 많은 부문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등장하고 있다. 종묘(種苗), 신문용지, 맥주, 살충제 등은 이미 외국자본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 독과점이익을 챙기고 있고, 갈수록 많은 시장이 외국기업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잘못하면, 국민의 정부 집권말에 우리나라의 대부분 금융기관과 핵심기업은 외국인 소유로 되어 우리는 형식상 국권은 있으나 경제권을 상실한 멕시코와 같은 품팔이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외국인 투자는 단기적으로 대외신인도 및 국내기업의 자산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측면도 있지만, 글로벌 차원의 단기수익 사냥을 위해 헐값의 기업지분을 인수한 다음 주식가치(shareholder-value)를 높인 후 투자분과 이익을 회수하는 것이 일반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연구개발과 인력개발 등을 고려한 장기투자를 통해 기업의 성장잠재력과 경쟁력을 배양할 만한 인내심도 애사심도 애국심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대체로 글로벌 자본의 단기적 속성인 것이다. 국내기업의 해외매각을 통해 수익이 상승하는 것도 단기적인 후생효과는 기대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해외자본이 우리경제를 「지배」하고 경제권을 토대로 국권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요기업들의 외국인지분을 보면 주택은행 64.65%, 국민은행 46.20%이며 삼성전자는 43.17%에 달한다. 많은 핵심기업들이 경영권방어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재벌체제 개혁은 필요한 시대적 과제이다. 보조금(특혜)중심의 산업정책하에 육성된 재벌체제는 글로벌화에 따라 변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의 방법과 진폭 그리고 속도는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최종 정책목표인 국권의 신장, 국부의 증진과 국민분배의 형평의 관점에서 부작용과 그 최종적 결과를 예상하고 추진되어야 한다. 예컨대 올해 말까지 기업부채비율을 200%로 낮추려면 30대 재벌은 1,600억달러(약 192조원·일본종합연구소 추산)가 필요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채비율의 감축속도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도입·운영이 수용한계를 넘어서면 대량 해외기업매각은 필연적이다.
초국가자본은 국내 핵심기업의 인수를 통해 우리 경제와 우리 기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장악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경제주권은 형해(形骸)만 남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산적 복지도 허구가 된다. 역대 프랑스 정부의 민영화정책은 경제권이 주권과 같다는 인식하에 외국자본에 의한 민영화기업의 경영권취득을 방어하기 위해 안정주주그룹의 선매권행사, 적대적 매수의 경우 기업간 상호협조의무 등의 조건을 충족한 안정주주그룹의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주권을 중시하기에는 독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재벌을 개혁하고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 잡는다는 좋은 정책이 중산층은 붕괴되고 외국인 중심으로 나라 경제가 운영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길 소망한다./박광작 성균관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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