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내홍으로 빠져들고 있는 당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전날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기습적인 초강수를 맞았던 민주산악회측은 이날 작심한 듯 이총재의 독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이와 함께 선거구제 문제를 놓고도 한바탕 소동이 이어지는 등 한나라당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감케하는 자리였다.
이날 이총재측과 민산측은 한치 여유공간도 없이 맞부딪쳤다.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고, 여야 격돌때나 볼 수 있었던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당초 당 지도부는 민산측의 반격, 용인보선 책임론 등을 우려, 회의 순서에서 토의시간을 뺐다.
그러나 마지막 순서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내는 질의서」를 채택하려는 순간, 엉뚱한 데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세기(李世基)의원이 소선거구제 당론을 문제삼고 나선 것.
이의원은 『발언권을 달라』며 단상쪽으로 걸어나왔고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연찬회는 불참해 놓고 이제와서 당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안된다』며 가로 막았다. 이의원이 『왜 발언권을 봉쇄하느냐』며 마이크를 잡자 이총무는 『끌어내』라고 고함쳐 총무단 소속의 임인배(林仁培) 권기술(權琪述)의원 등 이 이의원을 밀쳤고 보다 못한 이총재가 나서 이의원에게 발언권을 줬다.
이의원은 『연찬회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야지』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당무회의를 거치지 않은 당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소신발언」을 마쳤다.
이어 등단한 김명윤(金命潤)의원의 발언중에는 더 큰 소란이 일어났다. 김의원은 『국민의 기대가 클수록 당내 민주주의를 해야한다』며 『고문 해촉, 당무위원 해임이 총재의 권한이지만 마치 「조자룡 헌칼 쓰듯」 당을 독선적으로 이끌어서는 안된다』고 이총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의원석 여기저기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에게 그런 고언(苦言)을 하라』, 『지방당을 만들겠다는 거냐』, 『그만 하시오』 등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김의원은 『그런식으로 하니까 한나라당이 안되는 거야』며 맞받았다. 김의원 발언을 전후해 박종웅(朴鍾雄)의원과 임인배의원은 몸싸움까지 했다.
이총재는 『오늘 속 시원하게 털어놨다. 다 풀어버렸으니 이제 잘 다녀오겠다』며 애써 웃는 얼굴로 회의를 맺었지만 얼굴 가득한 수심을 감추지 못했다. 한 여성의원은 『당원이라는 게 창피하다』는 말을 서너차례나 내뱉으며 의총장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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