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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황인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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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황인숙 지음

입력
1999.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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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 대해, 아니 예술가 전반에 대해 떠도는 말들 중 하나는 그들은 재능을 타고 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후천적인 노력은 별무 효과이고 우선은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 나야 뛰어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지만 뛰어난 예술가가 보기 드문 현실이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예술적 재능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또 하나 떠도는 말은 예술가는, 아니 시인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하지 않은 예술은 불순하고 예술가에게 비계가 끼면 이미 그 예술은 순도를 잃은 가짜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다소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가의 물적인 기반이 되어주는 일반 대중의 문화적 욕구가 비등해지면서 그 말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니까.

여전히 가난한 시인들, 그러나 가난하지 않은 시인들. 시인들은 물적으로 가난하지만 상상의 공간에서 풍족하다. 시인 황인숙처럼. 그렇다. 재능을 타고난 황인숙은 가난하다. 하지만 황인숙에게서 삶의 자취들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녀의 시들은 삶의 어려움, 말의 덧없음을 가볍게 기화하여 우리들의 폐부를 찌른다. 그런데 이때 아주 많이 아프지는 않다.

그것은 예컨대 비가 온다고 그래서 그 비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적고 있는 순간 시 속의 화자는 어느새 비 그 자체가 된다. 그 비는 열린 유리창으로 들어오고 그 누군가의 눈썹을 적시고 이마에도 부딪힌다. 이런 접촉은 밝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내딛는다. 시 속의 소중한 이는 왠지 침울하다. 침울한 것이다. 그런데 읽는 나는 그 침울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진다. 슬픔을 가볍게 띄워 올리는 그 매직의 시어들 때문에. 천상 시인인 황인숙. 이 시집으로 「동서문학상」을 수상한다니, 매우 기뻐할 일이로다. 그런데 가난한 시인인 그녀는 상금을 타면 무얼할까?/정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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