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고운 것 보면 그대 생각납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내사랑은 당신입니다/ 지금 나는 빈들판 노란 산국 곁을 지나며 당신 생각합니다/ 빈 들판을 가득 채운 당신/ 이게 진정 사랑이라면 당신은 내사랑입니다/ 백날 천날이 아니래도 내사랑은 당신입니다」.「바위섬」의 가수 김원중이 최근에 발표한 노래다. 노랫말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 「내 사랑은」에서 따왔다.
시가 노래가 되어 책 밖으로 날아 오른다. 시에 곡을 붙여 널리 부르자는 모임이 생겼다. 그들이 공연도 한다. 시는 그림이 되기도 한다. 춤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음악가들이, 화가들이, 또 시인 자신이 책 속에 포박된 시를 세상 밖으로 해방시키고 있다. 시가 가진 천 가지 얼굴, 시의 영혼과 향기를 거기서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시, 그리고 노래
올해 초 몇몇 작곡가와 시인들이 만나 「나팔꽃」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시노래 모임이다. 『사람들의 귓전을 시끄럽게 스쳐 지나가는 그런 노래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외롭고 쓸쓸한 이들의 마음 속에 스며들어 삶에 위안을 주고, 따뜻한 사랑으로 세상에 번지는 시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회장을 맡은 김용택 시인은 『비인간화, 상업화해 가는 노래들 속에서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참다운 삶의 노래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와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씨의 시에 작곡가며 가수인 백창우, 이지상, 김현성씨 등이 곡을 붙였다. 「나팔꽃」은 이 노래로 9, 10일 저녁 한양대 동문회관 대극장에서 「작게, 낮게, 느리게」 공연을 갖는다. 장사익, 임희숙, 김원중, 신형원씨 등도 함께 노래한다. (02)708_4986, 3395_9176.
시인들은 400석이나 되는 큰 극장에서 자신들의 시가 노래로 불리는 것을 『쑥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공연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하나의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듣는 시, 보는 시
시인 김정란씨와 위승희씨는 최근 새로운 형태의 시집을 냈다. CD 음반 두 장과 음반 크기의 책을 한데 묶은 「사이키」와 「사이렌」. 잔잔한 음악과 성우들의 목소리가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낭송 음반이 아니라, 시인이 자신의 시의 진정한 목소리를, 제대로 된 음률에 실어 표현하는 것이다. 배경에 깔리는 노래는 낭송을 듣고 작곡가가 영감을 실어 창작했다. 김씨는 『음유시인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시는 활자에 갇히기 전 몸의 소리이며 영혼의 울림이었다』고 말했다. 낭송 음반은 시 전문지 「현대시」가 문화상품으로 기획해 「현대시 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 「현대시」는 내년 초까지 200인 밀레니엄 시집을 CD로 만들고, 인터넷에도 올릴 계획이다.
시가 춤으로 바뀌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전위적인 시를 많이 써온 성찬경 시인이 꽤 오래 전부터 자신의 시로 이런 행위예술을 해왔다. 함성호씨 등 젊은 시인들도 퍼포먼스를 했던 적이 있다. 정진규 시인은 4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의 한 포도원에서 자신의 시 「눈물_알 16」을 붓글씨 쓰기의 행위에 담아 표현하는 「먹춤」 공연을 가졌다.
■ 그림으로 태어난 시
2일 갤러리 현대에서 「시적 변용(詩的 變用)」이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끝낸 최선호 삼성 예술디자인대 교수. 그는 이번 전시회에서 황동규 시인의 섬세한 시어들을 그림의 제목으로 차용했다. 「삼남에 내리는 눈」 「겨울 노래」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종묘앞 싸락눈」 「즐거운 편지」 「한겨울에 꽝꽝한 얼음장」…. 언어의 힘은 점점 미니멀리즘으로 옮겨가고 있는 그림의 단순함을 보완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맑고 깊은 푸른 색에 흰색이나 빨강색을 섞어 표현한 그림들은 「제목이 반」이라는 그의 표현처럼 단순하고 절제된 미감을 관객들에게 이입시키는 훌륭한 매개체가 됐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황동규 시를 아주 좋아했지요. 시집에서 좋은 구절들을 발견하면 수첩에 적어 읽고 또 읽었습니다』
황동규씨는 개막일 누구보다도 먼저 최씨를 찾아 기쁨을 나눴다. 『시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잘 나왔다. 나의 시를 오래 전부터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정확하게 시어를 그림으로 옮길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은 방명록 첫장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깊고 넓은 화가가 되라」고 썼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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