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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情 받는만큼 돌려주는 것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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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情 받는만큼 돌려주는 것도 중요

입력
1999.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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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또 도움을 줄 능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보다 난감하고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에는 「감정투자」(感情投資)라는 말이 있다.나중에 부탁할 일이 생길 것에 대비, 사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작은 일을 챙겨주면서 정을 투자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의 감정을 너무 상업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기성세대의 처사에 한때는 심한 반감을 느꼈다. 그런데 한국서 생활하면서 그 반감이 어느 정도 동감(同感)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한국어 실력이 늘자 학위논문의 중문초록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긴 번역은 아니지만 학술논문이라 적지 않게 부담이 된다. 그러나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후배들이라 기꺼이 받아주곤 한다. 고맙다는 뜻으로 자그마한 선물을 받았을 때에는 기분도 좋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나의 수고를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새벽1시에 전화해 부탁하는 사람, 한번 번역해 준 초록을 내용이 바뀌었다며 재번역해달라는 사람, 아는 사람을 대신해 부탁하는 사람 등 종류도 많았다. 문제는 힘들게 번역을 해 준 다음이다. 애초 보수를 바라지 않았지만, 차 한 잔은 그렇다 쳐도 사후에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는, 기억력 나쁜 사람들이 간혹 있다. 예의 바르기로 소문난 한국사람인데…. 혹 몇 년 뒤에 생각나서 고맙다고 인사할지도 모르지.

아는 사람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는 것도 한국에서 배웠지만 가끔은 나의 인사에 표정없이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한국친구는 워낙 바쁘게, 힘들게 살다보니 인사를 받아주지 못할 때도 있다고 변명한다. 이처럼 평소 아는 체하지 않던 사람들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부탁한다.

처음에는 될수록 도우면서 살아야지 하며 부탁을 들어주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초록 한편에 보수까지 요구할 수는 없지만 거절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놀러가면 재워주고 먹여주겠냐 하고 묻는 한국사람들이 가끔 있다. 나도 이젠 「농담」을 잘 한다. 나한테 「투자」한 만큼의 수십배로 해주겠다고 답한다. 별 수 없다. 나는 아무래도 감정투자를 옹호하는 세속적인 사람인 것 같다.

/추웨이쿠웨이후아/서울대 국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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