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의 출산이 코앞에 닥쳤지만 이자는 불어만 가고…. 빚을 갚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했습니다』96년 10월 경영하던 의류업체가 부도나면서 2,500만원의 빚을 떠안은 A씨(32). 재기를 위해 몸부림쳐 봤지만 생계마저 꾸려나가기 힘들었다. 8월엔 셋째아이까지 태어났으나 빚은 늘고 늘어 3,000만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지난달 초 A씨는 급기야 장기밀매에까지 생각이 미쳤고 아내몰래 서울 B병원 화장실벽에 적혀있던 호출번호로 장기밀매업자에게 연락했다. 신장을 팔면 3,000만~3,5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장기밀매업자의 유혹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짓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한 돈이면 빚도 갚고 산후조리를 해야할 아내와 아기도 돌볼 수 있다는 마음이 앞섰다. 결국 A씨는 검사에 필요하다는 60만원을 만들어 장기밀매업자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고 돈은 떼였다. 장기밀매를 빙자한 사기범이었던 것이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3일 실직자 및 극빈자들에게 장기밀매알선을 미끼로 접근해 검사비를 챙겨온 권모(40)씨등 2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피해자는 A씨를 포함해 20여명. 서울역과 대형병원 고속버스터미널등의 화장실에 붙은 장기매매알선 스티커를 통해 마지막 남은 몸뚱아리라도 팔아 삶을 이어보려는 사람들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재기를 꿈꾸는 실직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한 범죄행각은 늘고 있는 추세』라며 피해자진술을 위해 출두한 A씨를 위로했지만 A씨는 벼랑끝에서 깨달음의 한자락을 잡은 듯했다. 『아직 괜챦습니다. 가족과 건강이 있다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 볼 수 있겠죠』
/김태훈기자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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