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설] 권희로씨 조용히 맞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설] 권희로씨 조용히 맞자

입력
1999.09.05 00:00
0 0

재일동포 무기수 권희로씨의 석방이 임박했다. 일본 법무성은 예정대로 7일 아침 일찍 권씨를 가석방해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우리측에 신병을 넘겨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로써 권씨는 사건을 일으킨지 31년 6개월만에, 40세 장년에서 70 노인이 되어 고국에 영주귀국하게 되었다.권희로 사건은 재일동포 한 사람이 온몸을 던져 민족차별에 항의한 것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 수단이 폭력적이어서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일본인들의 한국인 차별문제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석방에는 한일 양국관계사의 한 시대를 구획하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일본정부도 한일관계 개선의 상징적인 조치로 그의 석방을 결정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는 「권희로 신드롬」은 좀 생각해볼 문제다. 언론매체들이 앞으로 그가 살게 될 거처부터 계획까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보도해 그는 자칫 민족적 영웅인듯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의 일대기를 독점출판하려는 출판사들의 물밑경쟁이 치열하고, 대기업들은 이미지 광고에 그를 이용하려고 후견인들을 접촉하기에 부산하다. 그의 사건을 그린 영화 「김의 전쟁」도 되살아날 기세고, 그의 인생을 소재로 한 연극도 기획되고 있다. 그에게 생활비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독지가들의 출현이야 많을 수록 좋지만 상업적인 목적의 권희로 붐은 한일관계에 도움될 일이 못될 뿐 아니라, 그의 안전과 명예에도 좋을 것이 없다.

재일동포들조차 한국의 이상과열 현상을 걱정하고 있다. 민단 관계자들은 『권씨를 민족차별에 항거한 영웅처럼 부각시키는 것은 동포사회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재일동포 대다수가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인 2명을 살해한 범죄자를 민족정서로 감싸거나 영웅화하는 것이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를 걱정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당혹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한일관계에 새로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의 안전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폭력단은 벌써부터 그를 응징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실행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야쿠자 조직원 10여명이 엊그제 김해공항으로 입국해 부산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위협속에 민간인 후원자들이 어떻게 그의 안전을 지켜줄 것인가. 권씨의 석방은 축하할 일이지만 축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조용하게 맞아주는 것이 그와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인식해야겠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