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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BK21' 선정이 남긴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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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BK21' 선정이 남긴 숙제들

입력
1999.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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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두뇌한국21(BK21)사업 파동의 충격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크다. 진원의 파장은 서울대가 지원예산 거의 전부를 독식하게 됐다는 것으로부터 불거지고 있다. 탈락한 사립대들은 『심사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 『정보사전유출이 의심된다』 『들러리를 서게 만들었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반발하고 있다. 사립대들의 반발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사후약방문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첫째로 사립대들이 서울대를 위해 들러리를 섰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불투명하다. 대학들은 자신이 선정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자기 대학이 탈락됐다고 뒤늦게 들러리 운운하는 것은 너무 자조적이다. 게다가 사립대들이 정부에게 자율권을 달라고 하면서 이면에서는 정부가 사업선정을 조정해주기 바랐다면 그 자체가 자율권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자율을 기대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 하버드대는 조건이 있는 정부의 재정지원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주는 돈에는 예외없이 통제의 끈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립대들은 처음부터 자율을 거세당한 대학이다. 진정으로 대학의 자율을 원하면 독자적인 재정대책이나 발전노선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포항공대의 약진에 박수를 치고 싶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립대는 누가 뭐래도 선두에 서도록 돼 있다.

둘째 탈락대학들이 심사과정의 공정성을 문제로 삼을 수는 있으나 심사과정의 오류를 분명하게 조목조목 짚어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물론 교육부는 심사위원의 학부출신 대학성분마저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심사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해놓을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번 사업선정처럼 대학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동시에 사업선정 자체가 「너 살면 나 죽는다」식의 제로섬게임으로 이뤄진 것은 사립대 발전에 도움이 못된다.

만약 이렇게 생각했으면 전국교수협의회처럼 아예 처음부터 사업참여를 거부했어야 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사업신청에서 탈락한 대학에게 오히려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BK21사업을 위한 정부규제를 이행할 필요없이 독자적으로 발전적인 대책을 세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BK21사업이 서울대로 집중된 것은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개연성이 크다. 정부는 이전처럼 또 BK21의 정책을 바꾸지 말고 사후대책마련에 몰두해야 한다. 교육부는 우선 대학원교육의 불평등에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사립대 대학원은 말그대로 썰렁해지고 서울대 대학원은 초만원이 될 것이다.

종전의 학부입학전쟁이 서울대 대학원 입학싸움으로 전이되어 학력의 인플레이션 현상까지 기승을 부릴 것이다. 다음으로 서울대에는 병역미필자의 집결소라는 비난이 뒤따를 것이다. 대학원 입학생들에게는 이런저런 류의 병역특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무뇌병역 두뇌면제」의 불평불만이 거세져 국방의식마저 해이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BK21사업은 매년 수백명씩 박사학위 소지자를 양산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외국학자들 눈에는 이미 한국형박사학위 제조과정은 3류로 치부되고 있다. 결국 박사학위자에 대한 질 관리 소홀로 박사학위 무용론이 제기될 수 있다.

세계경쟁력을 위해서는 일본식의 징글리시 영어나, 싱가포르식의 싱글리시로는 안된다는 것이 일본과 싱가포르에서의 자성론이다. 그런데도 한국식 콩클리시 박사학위 소지자가 양산될 경우 차라리 세계 유명대학원에 유학보내 피튀기도록 경쟁시켰어야 할 것을 그랬다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한준상· 연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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