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재벌해체를 시사하는 대통령 자문위원들의 뒤이은 발언으로 재벌개혁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재벌개혁은 재벌해체에 있지 않고 재벌의 체질을 개선하는데 있다』고 곧 진화에 나섰지만 논쟁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특히 그동안 계속된 정부발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8월25일 정재계 합의형식으로 내놓은 재벌개혁 후속조치를, 재계에서는 사실상 재벌경영체제의 해체로 보는 등 무엇보다도 재벌정책의 일관성이 요구된다. 재벌문제의 모든 것이 재벌 특유의 소유_지배형태에서 출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총수에게 지나치게 편중된 소유_지배구조는 결국 총수의 경영전권 전횡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재벌의 소유_지배구조 개혁은 한국 재벌개혁의 핵심문제이다.
기업지배구조의 차이는 주로 소유구조에 의해 발생한다. 소유구조의 차이에 따라 의사결정권, 책임소재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진국 대기업들은 나라별로 소유_지배_경영구조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다.
선진국 대기업은 효율성을 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경영투명성 제고를 위한 갖가지 기업지배구조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소유자경영체제나 전문경영체제 모두 장단점이 있으므로 인위적인 소유분산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벌의 소유문제는 편법상속·증여를 엄중 차단함으로써 저절로 해결될 수 있고, 점진적으로 전문경영체제도 정착될 수 있다. 특히 한국재벌의 가족경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유주가 경영을 맡는 체제가 아니라 그 소유주가 경영전횡을 휘두르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그 혈족들이 세습적으로 경영총수 지위를 계승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소유_경영분리가 아니라, 재벌총수의 경영전횡을 실질적으로 감시, 견제할 수 있는 내부와 외부지배구조를 강화함으로써 책임경영을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의 재벌해체와 같은 극한 상황이 아닌 자본주의체제에서의 개혁이라면 한국재벌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점진적인 발전을 기대해야 한다. 한국재벌의 계열기업은 법적으로는 독립된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기업을 한 사람의 총수가 경영하는 단일기업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재벌은 개개 계열기업을 하나의 사업부문으로 보아 미국 대기업의 M_형 조직에서와 같이 제품별 사업조직의 독립회계에 의한 경영처럼 독립경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립경영이라 하더라도 총수의 사적 이익이 아닌 기업들간의 시너지효과를 위해서는 일본의 기업집단처럼 유연한 네트워크 형성이 필요하다.
전후 일본의 기업집단은 지주회사와 같은 본사는 없고 대신 상호출자 등을 통한 회원사간 연계가 이뤄져 있으며, 각각의 회원사는 법적으로 독립기업이고 독립경영을 하지만 기업집단 전체를 위한 회원사들간의 조정역할을 하는 사장단 회의가 있다. 반면 미국의 복합기업은 단일사업기업의 형태로 되어 있으나, 실제적으로 보면 재무, 법률부문 등 현업과 관계없는 부문으로 구성된 본사가 실질적인 독립경영을 하는 다수의 비관련 다각화기업들을 거느리는 기업그룹이다.
이에 비해 한국재벌은 실질적인 본사기능을 갖는 계열사나 조직도 있고, 동시에 상호출자 등을 통한 연계가 이루어져 있어 재벌행태의 가장 문제점인 총수가 경영전권을 갖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향후 한국재벌의 형태는 현재의 소유구조를 인정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경영책임을 물을 수 있는 합리적인 지주회사의 양성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주회사가 총괄하는 계열사들은 상호출자, 상호지급보증 등의 금지를 통한 철저한 독립경영을 유도하되 계열사간 시너지효과는 인정하는 독립기업들의 연합체가 바람직할 것 같다.
/강명현 단국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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