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내러티브가 있어서 좋다, 100억원 짜리 무협영화「중화영웅」내러티브(이야기)나 플롯(구성)은 낡은 유물인가. 아니면 이미지와 시각효과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인가. 서사(敍事)를 팽개친 영화들이 「새롭다」는 이름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없는 영화는, 그것이 아무리 테크놀로지의 현란함과 스타일리스트의 개성이 반짝여도 어딘지 헛헛하다.
과장과 허풍, 인간 능력에 대한 상상력의 극대화가 비현실적이지만 홍콩무협영화는 언제나 탄탄한 서사 구조 위에 서있다. 「화소홍련사」(1928년)에서 60년대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용문객잔」을 거쳐, 50년대 작품을 리메이크한 90년대 서극의 「황비홍」 「천녀유혼」이나 「소오강호」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구의 표현양식을 민감하게 차용해도 중국 역사와 중국인의 정서를 정확히 읽는 내러티브는 버리지 않았다.
영화 「중화영웅」(中華英雄)은 새로운 천년이 와도 홍콩무협영화는 그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순수제작비 100억원을 투입한 현란한 액션과 극사실주의적 영상이 눈이 어지럽지만, 큰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과 그 세월에 부대끼는 삶과 죽음을 통해 중국인의 우월성과 가족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중화영웅」은 가족사다. 그것을 황량한 거리에서 펼칠 때면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닮아 있다. 1930년대 아편을 앞세운 영국무역공사 직원에 저항하다 무참히 죽은 부모에 대한 복수를 하고 도망자로 미국 땅을 떠도는 천하무적 화영웅(정이건)과 그 가족이 겪는 비극, 아들에 대한 화영웅의 사랑이 전편에 걸쳐 펼쳐진다. 때문에 시대물이기도 하다. 외세에 대한 중국인의 저항과 미국 이민 초기 중국인의 애환을 가족사와 연결지었다. 화영웅이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의 현장인 채석장을 거쳐간다.
이같은 현실 위에서 「중화영웅」은 화려하고 상상을 초월한 액션을 펼친다.지난해 「풍운」에서 컴퓨터그래픽의 만화같은 영상은 무협영화에서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강위 감독은 만화가 원작이지만 디지털 기술로 「스타워즈」 같은 SF적 느낌을 연출했다. 「광선검」과 같은 「붉은 칼」, 마스크맨인 친구 귀복의 존재와 600컷 이상의 특수효과작업을 거친 극사실주의로 그려낸 일본무림 고수와의 결투. 자유의 여신상을 통째로 무너뜨리고, 유치한 애국심을 강조하지만 신세대 감각임에는 틀림없다.
일본 여자무사 수라(서기 출연)와의 사랑, 운명론, 우정까지 섞어 「중화영웅」은 한 편의 대작이 됐다. 절제된 대사와 촬영감독 출신다운 공들인 영상, 관객의 감정을 읽어내는 소품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욕심이 남긴 마무리 부족의 흠까지 메우지는 못했지만. 오락성 ★★★★ 예술성★★★☆ ★5개 만점 ☆은1/2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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