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서울대공원 동물들이 채 잠에서 깨기 전인 새벽 4시께가 되면 364종의 동물이 살고있는 우리에는 일일이 손전등 불빛이 비쳐진다. 서울대공원 사육주임 이길웅(李吉雄·57)씨가 동물들이 전날 밤을 잘 지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순찰하는 모습이다. 「동물박사」 이 주임은 동물원에 근무하기 시작한 65년이래 34년동안 줄곧 이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해 왔다.『잔병에 걸렸든지, 숙면을 못취했든지, 아니면 싸움을 했든지 움직임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뭔가 다른 행동을 하기 때문이죠』
이씨는 별명대로 각종 동물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다. 물론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은 아니다. 제대후 무작정 동물원을 찾아가 임시직부터 시작한 이후 평생을 동물들과 뒹굴며 살다보니 자연스레 「박사」가 됐다.
『동물은 절대 거짓말이나 거짓행동을 안 합니다. 맹수나 야생동물이라도 진심으로 대해주면 결국 가축처럼 고분고분하게 변합니다』
이씨의 동물관리법은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유별나다. 동물과 함께 자고 함께 먹으며, 자신이 지어준 이름을 부르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넨다. 몇개월이고 몇년이고 그렇게 하다보면 동물들이 마음을 열고 친구 겸 보호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씨의 숙소는 동물원 유인원관 사무실. 책상 옆에 아예 옷가지와 이불더미를 갖다 놓았고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린다. 사무실안에는 작은 우리가 있고 생후 20개월된 침팬지가 놀고 있다. 그 옆에는 월급을 쪼개 사들인 한약재와 녹용 인삼류, 비타민 소화제 가루분유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병치료와 간호도 직접 하지요. 또 어미가 보살피기 힘든 어린 새끼들은 내방으로 데려와 분유 등을 먹이며 키웁니다』
맹수나 나이가 든 동물들도 친해지기까지 기간이 오래 걸릴 뿐 이씨에게는 친자식들이나 다름없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에서 독수리 구렁이까지 먹이주기와 우리청소, 또 반복적인 대화를 통해 모두 길을 들여놓았다.
『가장 정이 든 놈은 68년 생후 4개월 때 동물원에 들어온 로랜드고릴라입니다. 평균 수명이 30년인데 31세가 되도록 건강히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리동」으로 이름붙여 30여년간 함께 지내왔으니 그 놈에겐 내가 친부모나 다름 없지요』
그러나 이씨에겐 요즘 고민거리가 생겼다. 23세때부터 시작한 동물원생활이 어느새 정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이씨는 이달 말로 고리동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과 헤어져야 한다.
『동물들과 얼마나 정이 들었는데 이제와서 그만둬야 한다니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동물과 함께 살아왔던 이씨는 영원히 동물의 세계에서 사는게 꿈이다.
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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