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독립찬반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동티모르가 끝없는 유혈사태로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투표는 커녕 살아남기 위해 밀림으로, 이웃 섬으로 탈출하고 있으며 많은 상점들이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유엔은 투표 강행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동티모르 독립파와 자치파간의 유혈충돌은 시간이 흐를수록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동티모르 유엔선거위원으로 활동중인 손봉숙(孫鳳淑·55·여) 중앙선관위원은 27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투표일이 임박하면서 유엔 직원들마저 신변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극도로 불안한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폭력사태가 계속된다면 누구도 동티모르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26일의 폭력 사태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중 최악이었다. 동티모르의 자치를 주장하는 친 인도네시아계 민병대들이 독립파가 들고 있던 독립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의 사진을 찢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 충돌로 최소한 5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민병대들은 M16 소총과 사제 총기를 쏴댔고 독립파들은 칼, 낫, 활을 동원해 맞섰다.
손위원은 『유엔 직원들도 밤늦게 까지 꼼짝없이 사무실에 갇혀 불안에 떨었다』면서 『전쟁을 방불케하는 총소리 때문에 유엔 경비대의 호위를 받아 한밤에야 겨우 귀가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자치파들은 27일에도 도시 곳곳에서 산발적인 무력시위를 벌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CNN 방송은 주민 수천명이 밀림 지역에 피난가거나 배편으로 동티모르를 떠나는 등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투표를 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한데 어떻게 앉아있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유엔파견단(UNAMET)의 윔 허스트 대변인은 『민병대의 목표는 주민들이 투표소로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투표 무산의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유엔의 입장은 단호하다. 유엔 안보리는 26일 투표 강행을 재차 결의하는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에 민병대에 대한 단속을 요구했다. 손 위원은 『현재 850여개 투표소가 마련됐으며 1,700여명의 국제 감시단이 선거과정을 지켜볼 것』이라면서 『일단 예정대로 투표를 치르는 게 유엔의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치안을 맡은 인도네시아군의 비협조적 태도와 이들의 지원을 받는 자치파 민병대의 폭력행위는 투표 과정은 물론이고 투표 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동티모르에서 누려온 이권을 놓칠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가 떨어져 나가면 다른 지역들에서 연이어 분리독립을 일어날까 우려하고 있다.
독립찬반을 위한 선거운동은 이날 마감됐으며 28, 29일 양일간 냉각기간을 거쳐 30일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또 동티모르 주둔 유엔 경찰 병력을 760명으로 증강하고 주둔 기한도 11월30일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결의안 채택을 추진중이다.
사태는 와의 유혈충돌이 폭력사태가 확산되면서 자칫 투표 자체가 무산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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