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상원의원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75자 미만으로 논술하시오』영국 세습 상원의원들은 조만간 이런 내용의 작문시험을 치러야 할 판이다. 의회개혁을 추진중인 토니 블레어 정부가 내놓은 「세습의원 퇴출법」 때문. 633명에 이르는 귀족출신 세습의원 전원을 제거할 방침인 블레어 정부는 당분간 상원내 세습의원 규모를 92명으로 하되, 75자로 된 연설문으로 선거운동을 대신한다는 방안을 세웠다. 세습의원들은 10월 21일까지 연설문을 상원에 제출하고 취합된 문안들이 상원 도서관에 게시되면 이를 보고 동료 의원들이 92명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른다는 것. 선거과정에서 불거질 상대방 비방 등의 잡음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이 방안은 즉각 세습귀족 사이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가 25일 보도했다. 「그 짧은 문장에 어떻게 의미있는 말을 담을 수 있겠는가」라는 불평에서부터 「이미 복잡한 선거제도에 웃음거리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까지 뒤섞여 있다. 보수당 소속 귀족인 맨크로프트 경(卿)은 『모든 것이 웃긴다. 내 바짓가랑이의 넓은 쪽 치수까지 포함시켜야 하는가』라며 비꼬았다.
더 타임스는 한술 더 떠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나는 사유지 관리와 마술(馬術), 우유부단함, 드리블 하기, 프랑스 보르도산 포도주 마시기에 뛰어난 실무적 지식을 갖고 있는 행동가이며 특히 상속세의 허점과 관련, 복잡한 조세제도 이용에 대한 경험은 물론 미술시장에서 매도인으로서의 지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새 선거법은 이와 함께 의원식당에서 향응을 제공하는 등의 공공연한 선거운동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물밑운동이 은밀히 진행중이라는 후문이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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