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사태가 한달째로 접어들고 있다.지난달 19일 대우의 그룹해체 선언으로 시작된 대우사태는 23일 주가 대폭락을 야기시킨 「검은 금요일」을 계기로 「대우의 위기」를 넘어 「금융의 위기」 「대외신인도의 위기」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지금까지도 뾰족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커녕 상황은 더욱 꼬여가는 양상이다. 대우사태 한달을 점검하며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대우라는 시한폭탄의 해체 없이는 처음부터 기업·금융구조조정은 마무리될 수 없었다. 따라서 대우의 해체는 분명 한국경제의 장래에 호재였다. 제2위 재벌을 수술대에 올림으로써 대외적으론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의 종말」을 말할수 있게 됐고, 개혁이완에 대한 비난여론에 직면하고 있는 현 정부는 그만큼 신뢰도를 회복할 수도 있었다. 금융시장의 「블랙홀」을 제거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돈의 흐름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주가하락, 금리상승, 투자자금이탈등 단기혼란은 예상됐지만, 지금같아선 혼란이 결코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분명 「호재」였던 대우사태는 잘못된 관리로 지금 「악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악재가 돼버린 호재
「호재관리 실패」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시장의 생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시장을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철학도 없이, 그저 단기미봉책만 남발하다가 결국 시장안정에도 실패하고 정부의 신뢰추락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김세진(金世振)박사는 『정부는 대우사태 수습을 위한 사전준비만 대충 끝내놓고 사실상 손을 놓아 결국 투입될 공적자금만 키우고 환매사태와 투신권 붕괴를 방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대우 해체라는 사상 초유의 「거사」를 치르면서 제대로 된 「마스터 플랜」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수익증권 환매중단 창구지도→대우채권 환매제한→수시입출금식 투신상품(MMF) 환매허용으로 이어진 지난달 25일 이후의 시장안정 대책이 그 대표적 예다. 한 투신사 관계자는 『차라리 처음부터 대우채권을 환매제한시켰다면 차라리 파장은 적었을 것』이라며 『수시로 방침이 뒤바뀌고, 내일 또 어떤 조치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투자자가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부실기업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손실분담(Loss-Sharing)」원칙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채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식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투자리스크를 스스로 부담해야하는 수익증권 가입자들에게 정부가 환매자제 조건으로 사실상 원금보호약속을 한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도, 투신사도, 은행도 손실을 입지 않는다면 결국 대우사태와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이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배드펀드 만들어야
환매사태로 야기된 시장불안을 조기수습하려면, 당장의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손실분담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강대 김병주(金秉柱)교수는 『투신사 펀드중 대우채권만을 떼어내 배드펀드를 만들고,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손실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당장은 손실을 입게 될 투자자들의 저항이 있겠지만 시장원리대로 처리해야만 결국 시장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대우채권 손실률이 30%고 투자자, 투신사, 정부가 각각 3분의1씩 손실을 분담키로 했다면, 투신사는 투자자 손실분 10%를 뺀 90% 가격으로 대우채권을 배드펀드에 넘긴 다음 정부와 투신사가 20%를 보장토록 하자는 것이다.
■채권시가평가제 조기도입
내년 7월 실시예정인 채권시가평가제를 앞당겨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李仁實)박사는 『투신사들은 장부가보다 실제 수익률이 못미치는데도 이를 감당하다보니 부실이 깊어졌다』며 『시가평가가 실시되면 부실이 한꺼번에 노출돼 대규모 환매가 있겠지만 어차피 닥칠 패닉(공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종양」을 미리 터뜨린 다음 새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위원은 또 『시가평가는 손실분담원칙의 전제조건이며 이 경우 부실채권에 대한 손실부담은 전적으로 투자자에게 돌아가지만 신탁재산의 성격상 이는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대우부채의 채무조정
대우계열사의 매각가치를 높이기 위해 채권단에 의한 추가자금지원 및 채무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관계자는 『현재로선 계열사들을 빨리 파는 것외에는 묘책이 없다』며 『비싼 가격에 빨리 팔기 위해선 대우 계열사의 매각가치를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선 채권단이 추가자금지원 및 부채탕감, 이자율감면, 단기부채의 장기연장등 「리스케줄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리더십 회복
하루빨리 정부가 「시장원칙」으로 되돌아가고 무엇보다 대우처리의 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준일(金俊逸)박사는 『이 상태로 가면 대우의 시간벌기에 말려들 수 밖에 없고, 시장이 이를 모를리 없다』며 『정부주도로 계열사별 처리시한을 정하고 협상시작, 의향서교환, 계약체결등 스케줄을 잡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책임을 피해 전면에 나서지 않고, 투자자들의 반발이 두려워 모두를 만족시키는」 태도에서 벗어나 「책임을 지더라도 전면에 나서고, 반발이 있더라도 손실을 엄격히 분담하는」 정책태도의 대전환 없이는 대우사태는 해결될 수 없고, 결국 제2의 경제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