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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맥] 창작과 비평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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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맥] 창작과 비평 (상)

입력
199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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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70년대 유신시절, 독재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비판적 지식인의 저항도 거세졌다. 정권은 무자비한 물리력을 앞세웠지만 문인 교수 종교인 등 저항세력에게는 계간 「창작과비평」이라는 무기가 있었다.창비에서 활약한 지식인이 한 둘 아니고 훗날 그들 대부분이 문단과 학계에서 명성을 얻었던만큼, 한 사람의 태두를 정점으로 후배들이 뒤를 잇는 일반적 의미의 인맥으로 묶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당시 창비는 비판적 지식인을 하나로 묶는 훌륭한 매개가 됐다. 그래서 황동규(黃東奎)시인은 창비를 중심으로 활동한 지식인들을 「창비학교 학생」으로 불렀다.

창비는 한일국교정상화 문제로 민심이 흉흉하던 66년1월 창간됐다. 산파는 서울대 영문과 백낙청(白樂晴)교수. 미국서 막 돌아온 20대 후반의 젊은 학자였다. 『미국의 보수적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귀국하면 역시 보수적 분위기가 강한 한국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잡지가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과∼」식의 이름은 당시만해도 파격이었다. 백교수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제호는 내가 정한 것 같다』고 말한다.

초기 창비의 주류는 문예물이었다. 방영웅(方榮雄)의 「분례기」는 창비에 대중적 명성을 더해주었다. 68, 69년 차례로 타계한 민족시인 김수영(金洙暎) 신동엽(申東曄)씨는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고 김정한(金廷漢) 김광섭(金珖燮) 김현승(金顯承)씨도 작품을 발표했다. 조태일(趙泰一) 씨 등도 본격적인 시작에 나섰다. 백교수가 69년 박사과정을 위해 다시 도미한 뒤로는 현재 영남대 독문과교수로 있는 염무웅(廉武雄)씨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편집장을 맡은 염씨는 시인 신경림(申庚林), 소설가 황석영(黃晳暎)씨를 주목했다. 신경림씨의 시 「농무」와 황석영씨의 중편 「객지」는 창비가 주창한 민족문학의 구체적 성과물이었다. 이호철(李浩哲) 이문구(李文求)씨의 소설도 지면을 장식했다.

베트남전쟁의 실상을 소개한 리영희씨와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고려대 강만길(姜萬吉)교수 등의 가세로 창비는 종합잡지로 탈바꿈한다. 74년 창비는 도서출판 창작과비평사를 별도로 설립하고 단행본 출판도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본격적인 탄압이 가해진다. 백교수는 민주회복국민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서울대로부터 사표제출을 종용받았으며 12월 파면된다. 이해 11월 발족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창비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정부의 비위를 거슬렸다. 김지하시인의 「1974년 1월」 「빈산」, 고은시인의 「임종」 등이 실린 75년 봄호가 긴급조치 9호 선포와 함께 회수됐고 리영희씨의 「베트남전쟁3」이 게재된 여름호는 판금됐다. 76년2월에는 염무웅교수가 덕성여대에서 해직된다. 이듬해 단행본으로 펴낸 「8억인과의 대화」때문에 저자 리영희씨가 구속되고 백교수는 불구속 기소된다.

탄압이 거세질수록 쟁쟁한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이화여대 미대 김윤수(金潤洙)교수, 언론인 송건호(宋建鎬) 천관우(千寬宇)씨, 문학평론가 구중서(具仲書)씨, 소설가 천승세(千勝世) 박완서(朴婉緖) 윤흥길(尹興吉)씨, 시인 민영(閔暎) 문병란(文炳蘭) 김준태(金準泰)씨 등이 주요 필자들이었다. 78년에는 김윤수교수가 해직되면서 백낙청 염무웅 김윤수 등 창비 3인방이 편집위원회를 꾸렸다. 민족경제론의 주창자 박현채(朴玄埰)씨가 「한국노동운동의 현황과 당면과제」를 쓰면서 리영희, 강만길씨와 함께 창비의 3대 필자로 떠올랐다. 소설가 현기영(玄基榮) 송기숙(宋基淑)씨, 시인 정희성(鄭喜成) 양성우(梁性佑)씨, 여성학자 이효재(李效再)씨 등이 79년말까지 지면을 장식했다.

79년 가을 유신이 막을 내리고 이시영(李時英)시인이 편집장으로 합류한 뒤 창비에도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피기도 전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창비에는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기획물 「80년대를 위한 점검」과 조화순목사의 수기 「민중의 딸들과 함께」가 삭제됐고 양성우 시인의 단행본 시집 「북치는 앉은뱅이」의 판매가 금지된다. 그리고 7월 백교수가 계엄사에 연행되더니 결국 국보위 결정으로 강제 폐간된다. 56호였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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