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재직 중에 암살되어 정치적 꿈과 포부를 다 펴지 못한 대통령들을 색다른 방법으로 추모하고 있다. 비운의 대통령 이름으로 가장 중요한 문화공간을 마련한 것인데, 워싱턴시의 케네디센터와 뉴욕시의 링컨센터가 그것이다. 두 공간은 지난 30년간 공연예술과 교육장으로서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해 왔다. 그곳은 또한 전세계 예술가들이 선망하는 무대가 되어 있다. 좌절된 정치가의 꿈이 예술로 승화되어 명예와 이상을 이어가는 셈이다.■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도 그것을 세운 대통령의 이름을 땄다. 공연예술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이 함께 있는 퐁피두센터는 애초 건축할 때부터 건물의 전선, 파이프 등을 과감하게 외벽으로 노출시키는 등 강한 실험정신을 내세웠다. 이 건물은 파리시민과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세계적 명소가 되었고, 그 앞 광장에서는 이채로운 행위예술도 자주 펼쳐진다.
■조선시대이긴 하나 국가원수의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세종문화회관도 유사하다. 최근 재단법인으로 새 출발한 세종문화회관이 세종센터로 이름을 바꾸려 하고 있다. 「회관」이란 용어가 일제시대에 유행하던 말이기도 하지만, 케네디센터나 퐁피두센터 처럼 시민이 아끼고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이미지를 심고자 하는 듯하다. 「세종」을 바꾼다면 문제가 크지만, 「문화회관」을 국제적 감각의 「센터」로 고치는 것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세종문화회관이 대중문화에도 점차 문을 열었듯이, 명칭도 시대에 맞게 변할 수 있다. 본질적 문제는 껍데기만 남은 듯한 그곳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좋은 예술행사가 끊이지 않고 시민이 함께 호흡하는 역동적 공간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운영개혁에 대한 시민의 호응도 뜨거운 것으로 전해진다. 한 명을 모집하는 공연기획 담당직에는 37명이나 지원했는데, 이중 다수가 「문화 게릴라」로 불리는 일급 공연기획자였다고 한다. 「문화의 세기」를 알리는 서곡이 서울 복판 세종로에서 크게 울려퍼지기를 기대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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