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새가 앉아 있다. 청명한 하늘과 북악(北岳)이 새를 타고 앉았다. 경복궁 중문(中門)인 흥례문의 살짝 올라간 추녀선이 맑은 하늘을 찌른다. 날개(회랑)는 동서로 활짝 펼쳐졌다. 뒤로 근정문_ 근정전_강령전_교태전_ 북악으로 이어지는 경복궁 남북축선의 위풍이 당당하다.경복궁 복원사업이 올해를 징검다리로 새 천년을 향해 나아간다. 20년 「대장정」의 복원사업은 올해로 꼭 절반인 10년 째. 10월 말에는 동궁(왕세자 생활 지역) 권역공사가 마무리된다. 6년 만의 완성이다. 문화재청은 이를 기념해 10월 말 왕세자 책봉의식을 재현한다. 복원사업은 96년 11월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로 본격화해 지난해 말 그 자리에 흥례문이 복원되면서 궤도에 올랐다.
▦동궁 복원과 그 이후
94년 시작된 동궁권역 사업은 근정전 오른쪽 건물 18동(352평)을 복원하는 것. 담장·미장 공사 등만 남았다. 자선당과 비현각이 일자로 아담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던 흥례문 권역은 2000년까지 흥례문 주변회랑, 주변회랑 안 어구(수로) 120㎙와 수로를 가로지르는 영제교를 복원, 조선 왕조 궁궐의 위용을 되찾는다. 경복궁 북서쪽 30단 경비단이 자리잡고 있던 태원전(선대 왕의 어진을 모시는 곳) 권역도 2002년까지 25동(469평)이 복원된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복원이 이뤄지는 광화문 권역의 경우 광화문을 현 위치에서 목조건물로 다시 지으면서 방향을 바로잡는다. 광화문의 본래 방향은 경복궁 남북축선을 기준으로 현재 방향에서 동남쪽으로 3.5도 틀어야 한다.
경복궁 건물의 설계도면은 본래 없다. 「궁궐지」에 건물의 규모와 목재의 크기만이 기록돼 있다. 경복궁 복원은 「북궐도형」과 「조선고적도보」, 「궁궐지」, 발굴조사 등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복원사업 어떻게 하나
복원사업의 사령탑은 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신응수(申鷹秀·57)씨와 문화 재위원 5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 한 달에 한번 경복궁 현장에서 회의를 열고 건물의 세부양식, 재료, 건축기법 등을 고증한다.
복원사업 현장에는 고증학자, 발굴요원, 도편수(우두머리 목수) 뿐 아니라 단청장, 소목장(가구제작 목수), 와공, 미장공 등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다. 현재 1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목재는 소나무만 쓴다. 대체로 곧은 나무가 많이 쓰이지만 처마선을 살릴 때는 굽은 나무도 쓴다. 그러나 건축이 한국산 소나무로, 조립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기둥으로 쓰이는 직경 90㎝ 이상의 나무는 북미산 소나무가 수입됐고 서까래 누르개인 적심을 고정할 때는 못도 쓴다. 기와는 울산과 강진의 전통 흙기와 공장에서 가져왔고, 기와는 빗물이 잘 새지 않도록 3겹 잇기로 한다.
▦나무와의 전쟁
궁궐 건축의 성패는 얼마나 좋은 목재를 쓰느냐에 달려 있다. 건축용으로는 나이테 간격이 좁은, 같은 키라도 나이가 많은 소나무가 좋다. 좋은 나무를 얻을 수 있는 시기는 초겨울(10~1월) 4개월 뿐. 초겨울에 벌채해 겨우내내 묵혀야 한다. 문화재청은 기와 강회 등 다른 재료의 구입은 시공자에게 맡기지만, 소나무 목재 구입은 직접 한다. 신응수씨도 1년의 절반은 강원도 태백산을 헤매며 좋은 나무를 찾는다. 문화재청은 소나무 규격과 수량 정보를 포함하는 소나무 분포 현황을 전산화해 활용할 예정이다.
▦에피소드
대규모 사업이라 때론 오해도 받는다. 4월 20일께 감사원 직원 7명이 서슬퍼런 얼굴로 경복궁 공사 현장을 찾았다. 『경복궁 복원에 웬 수입목입니까. 흥례문 처마가 왜 근정문 처마보다 높습니까』 감사원 직원들은 10여일간 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문제 없음. 직경 90㎝ 이상인 소나무를 국내에서 구하기는 무리라는 사실이 인정됐다. 또 새 건물의 처마는 건물의 하중을 오랫동안 받은 기존 건물 처마보다 높아야 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문화재청 궁원관리과 목재팀 4명은 93년 겨울을 잊지 못한다. 대목(大木)을찾아나선 이들은 강원 삼척 이천골 입구에서 차를 멈춰야 했다. 폭설 때문이었다. 그리고 걸어서 눈길 100리. 산막에서 누룽지를 얻어먹으며 50시간 이천골을 헤집고서야 울창한 송림(松林)을 만날 수 있었다. 직경 60㎝, 높이 20m의 소나무 200~300주. 목재의 보고였다. 이 나무들은 침전 지역의 대들보, 기둥, 추녀로 쓰였다.
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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