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총리 해임건의안' 자동폐기 이모저모 -제206회 임시국회 후반기를 파행위기로 몰아갔던 김종필(金鍾泌)총리해임건의안 문제는 결국 「소문난 잔치」답게 싱겁게 끝났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등 여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모두 퇴장, 표결 자체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해임안이 자동 폐기됐기 때문.
해임건의안이 상정된 시각은 당초 회기종료시한을 불과 15분 앞둔 13일 밤 11시45분. 시간이 촉박하자 여야는 긴급 총무회담을 갖고 회기를 하루 연장키로 결정한 뒤 밤 12시 차수를 변경, 14일 새벽까지 안건을 다뤘다.
회기 막판 핵심현안으로 등장했던 농업법이 가까스로 기립표결끝에 통과된 직후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이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상정합니다』라며 의사봉을 세 번 힘차게 두드리자 국회 본회의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앞선 농업법처리 과정서 반대토론에 나선 권오을(權五乙)의원이 시간을 끌자 『빨리 끝내라』고 고함을 치며 조바심을 쳤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표정에서는 비장감마저 엿보였다.
먼저 자민련 정우택(鄭宇澤)의원이 의사진행발언에 나섰다. 정의원이 『해임건의안은 법률적으로도 맞지 않고 정치적인 모략중상』이라며 야당을 거세게 비난하자 야당의석에서는 야유와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어 한나라당 박원홍(朴源弘)의원이 등단, 제안설명을 통해 『김총리가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국민에 대한 사기극』이라며 『여당은 정정당당하게 소신껏 투표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표결은 14일 0시3분 본격 시작됐다. 박의장의 표결개시 선언에 따라 의사국장이 여야 의원들을 차례로 호명했다. 그러나 박원홍의원 발언때부터 삼삼오오 퇴장하기 시작한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은 이미 본회의장에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국민회의 이윤수(李允洙)수석부총무와 방용석(方鏞錫)부총무가 표결에는 참여치 않은채 상황을 지켜봤고, 국민회의 이훈평(李訓平)의원은 감표위원의 역할만 수행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외롭게」 투표를 시작했지만 0시7분 박의장은 『지금 의결정족수가 되지 않으니 여당 의원들을 기다리자』며 투표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야당의원들은 박의장의 조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않고 야유를 보내며 투표를 강행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투표를 마친 시각은 0시20분. 박의장이 『하실 분 다 하신 것 같은데…』라며 「상황종료」할 뜻을 밝히자 이부영(李富榮)총무가 의장석에 올라가 여당의 투표참여를 계속 촉구하도록 요구했다.
박의장은 할 수 없이 『의원들이 투표를 더 할 수 있도록 3당 총무들이 계속 협의해 달라』며 형식적인 「성의」를 표시했고, 이총무는 의사당 1층 국민회의 총무실까지 쫓아가 박상천(朴相千)총무에게 참여를 설득했다. 의사당안에선 『의원님들은 투표에 참여해 주기 바란다』는 의사국 직원들이 방송이 몇차례 되풀이됐다.
이 때부터는 한나라당의원들의 「버티기」순서였다. 야당의원들은 돌아오지않는 여당 의원들을 기다리며 의석에서 마냥 시간을 보냈고 박의장등 국회 관계자들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결국 박의장은 0시45분 『투표를 다 하시도록 독촉했으나 (의원들의) 의사가 안 보인다』며 투표종료와 함께 개표시작을 알렸다. 의사국직원들이 확인한 명패수는 125매에 불과, 의결정족수인 150매에 한참 모자랐다.
박의장은 『투표자수가 재적의원 과반수에 달하지 않았으므로 투표수 집계는 안하겠다』며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린 뒤 206회 임시국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박의장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자리를 바라보며 『야심한데 이총재나 모두 수고했고 분을 삭이고 돌아가시라』고 위로한 뒤 의사봉을 놓은 시각은 새벽 0시49분. 지난 며칠간 정치권을 온통 뒤흔들었던 해임건의안이 맞은 운명은 자동폐기의 허망한 것이었다.
○…총리실은 해임건의안이 자동폐기되자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날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비상대기」하며 국회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수석비서관 등 일부 간부들은 『행여 의외의 사태가 생길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국회가 폐회한 뒤에도 한나라당이 총리해임건의안 문제를 빌미로 규탄대회를 연다는 등의 정보보고에는 우려감을 감추지못했다. 한 간부는 『큰 고비는 넘겼지만 여야 갈등이 더욱 심해져 정치불안이 장기화할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해임건의안이 상정된 10일부터 비서실을 통해 「소이부답(笑而不答)」이란 말만 전했던 김종필(金鍾泌)총리는 이날도 국회상황에 개의치않는 듯 평소처럼 오후 6시께 퇴근했다.
/신효섭기자 hsshin@ 김광덕기자 kdkim@ 이동국기자 east@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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