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5억원, 상상과 환상을 자극하는 귀신 이야기. 4억원을 들인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CG).3차원 애니메이션이 도심 한복판에 저승열차를 달리게 하고, 호수와 강의 물을 거대한 물귀신과 물기둥으로 바꾼다. 미니어처와 컴퓨터는 하늘 위에 저승세계를 건설했고, CG 합성은 강렬한 빛으로 귀신을 산산조각 냈다. 몰핑(장면사이에 여러 중간 단계를 삽입하는 그래픽 기법)은 백지장(유혜정)의 얼굴을 수시로 바꾸고, 크로마키(배경과 인물을 따로 촬영해 합성)로 진채별(김희선)은 전철에 실감나게 부딪쳐 죽는다. 「구미호」로 시작해 「은행나무 침대」「용가리」「유령」을 거치면서 한국영화의 테크놀로지도 여기까지 왔다.
14일 개봉하는 이광훈 감독의 「자귀모」는 우선 아이디어와 소재가 기발하다.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이니 별난 개성과 갖가지 사연들이 있을 터이고, 명계남 박광정 이영자 등의 독특한 캐릭터는 서로 충돌하면서 웃음을 만든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 이야기이니 복수에 따른 공포도 적당히 섞었다. 사후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을 심각하지 않게 표현하면서도 영화의 다양한 코드들을 충족시키려는 이른바 신세대적 「퓨전 무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자귀모」는 단순한 코미디임을 거부한다. 우리사회의 편견과 폭력과 희생의 한 단면도 보여준다. 미움과 복수보다는 용서와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는 전통적 도덕관을 강조한다. 죽음에 대한 애달픔도 있다. 변심한 애인(차승원) 때문에 얼떨결에 자살한 진채별(김희선)과 애인의 목숨을 구하고 죽은 칸토라테스(이성재)의 사랑이 멜로적 감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느 하나 깊은 맛이 없다. 헛헛하다. 마치 화려한 포장의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랄까. 개성은 시트콤처럼 돌출하지만 설득력이 적은 캐릭터들. 산만하고 리듬을 잃은 극의 전개와 단조로움. 저승사자가 성폭행한 남자들에게 복수하는 백지장을 좇는 장면에서조차 공포나 긴장을 잃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결함은 영화의 중심 축인 김희선의 표피적 연기. 2년전 「패자부활전」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감정을 대사로만 표현, 귀신영화의 매력인 판타지와 상상력을 앗아가 버렸다.
하지만 「용가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이어 「자귀모」도 두 가지를 확인시켜 준다. 이제 한국영화도 돈과 땀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으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할리우드에 버금가는 영상으로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자귀모」는 한국영화의 자신감에 「판타지 영화」라는 또 하나의 영역을 추가했다. 그러나 그것도 시나리오, 내러티브(대사), 연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한다. 스타일, 기술도 좋지만 이제 한국영화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기초들이다. 오락성★★★☆ 예술성★★★ ★5개 만점, ☆은1/2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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