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학생들의 집단 식중독 사고가 그렇게 자주 일어났던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급식시설을 갖출 수 없는 학교들이 외부업체에 급식을 맡겨놓고 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학교에서 일제히 단체급식을 시행해 보겠다는 성급한 전시행정의 결과였다.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원이 최근 조사한 서울시내 132개 고교 급식위생 실태를 보면 그동안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비위생적인 점심식사를 해왔는지 아찔하다. 외부업체에 급식을 위탁하고 있는 학교들중 30개교(22.7%)의 급식업체 위생관리 실태는 100점 만점에 44점 이하로 평가되었다. 또 25개교에는 급식재료의 신선도와 품질상태 점검 없이 만들어진 식사가, 72개교에는 영양관리를 제대로 하지않은 마구잡이 식단이 제공되었다.
자체 조리시설을 갖춘 학교의 경우도 「우수」로 평가된 학교는 16%에 불과했고, 20% 이상이 미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런 열악한 자체시설과 엉터리 급식업체에서 만든 음식을 먹고 탈이 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지난 4월 이후 서울·대구·순천·상주·구미·봉화 등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 집단 식중독 사건이 일어났다. 일주일에 한번꼴로 수천 수백명의 학생들이 구토 설사 복통에 시달리는 일이 계속되자 집단적인 급식거부 현상이 일어났다. 서울의 한 여자중·고 구내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은 학생 2,000여명이 배탈이 나자 학교급식을 거부하는 학생이 1,000명에 달한 사례도 있었다.
불량급식 소동은 한꺼번에 모든 학교에서 급식을 시행케 한 전체주의 폐습 때문에 일어났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학생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전국 모든 고교에 학교급식 확대시책을 강행했다. 2,000개 가까운 고교중 1,000여개교에는 작년중 교내 급식시설을 갖추게 했고, 나머지는 외부업체에 위탁을 해서라도 올해 1학기부터 단체급식을 시행토록 서둘렀다.
어머니들이 도시락 부담에서 해방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음식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자체 급식시설 건물과 수도 전기시설등을 정부가 지원해 급식단가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한끼당 1,500~1,700원으로는 위생적이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물가현실이다.
전국 모든 학교가 일제히 학교급식을 시행토록 하겠다는 성급한 실적보다는 여건이 갖추어진 학교부터, 원하는 학생에 한해, 단계적으로 안전하게 확대해 나갔어야 한다. 이제라도 시설을 확충하고 급식단가를 현실화해 음식의 질을 높여야 한다. 또 철저한 위탁업체 관리로 다시는 식중독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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