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71개 상영관. 14일이면 「자귀모」가 30개, 「인정사정 볼것 없다」가 23개, 「유령」이 18개 상영관에서 상영된다. 「용가리」까지 합치면 전체(150개)의 절반이 넘는다. 더구나 할리우드가 판을 친다는 한여름에.외화를 걸어야 돈을 번다는 극장들의 인식도 사라졌다. 이제는 한국영화가 좋으면 외화를 거부하거나 가차없이 내리는 극장도 하나 둘 생겼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많아야 한국영화 한 작품이 차지할 수 있는 상영관은 18개가 고작이었고 한국영화가 극장 전체의 30%를 넘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은 한국영화 자체의 힘. 지금보다 한국영화가 크고 강한 적은 없었다. 「쉬리」를 시작으로 할리우드에 당당히 맞서는 우리의 블록버스터들이 나왔다. 여름사냥의 시작인 「링」(6월12일 개봉)부터 「유령」까지 「이재수의 난」을 빼고는 소재든 스타일이든 모두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할만한 매력들을 가졌다.
그렇더라도 쉽지 않다. 여전히 미국 직배사들은 다음 영화를 무기로 배급망을 장악하고 있고, 예상외 흥행 부진에 초조해진 나머지 무조건 일정기간 자기영화를 걸도록 강요한다. 결국은 이런 상황에 맞설 만큼 한국영화의 배급력도 강해졌다는 얘기다.
그 선봉에 시네마서비스의 강우석이 있다. 3년전 그는 『한국영화가 살아나려면 만드는 것 이상 배급도 중요하다』며 감독보다는 제작과 배급자로 나섰다. 배급력을 키우는 방법은 적어도 한 달에 한 편은 공급할 수 있게 제작하는 것. 그래서 그는 자기 주머니를 털고, 여기저기서 돈을 모아 좋은 영화에 투자했다. 손해본 영화도 많았다. 올해만 해도 「마요네즈」 「연풍연가」 「이재수의 난」으로 32억원을 날렸다. 필요하면 직배사(20세기 폭스)의 배급망을 빌리기도 했다. 그 결과 그는 한국영화의 30% 이상을 제작하고 큰 손이 됐고, 삼성마저 손을 든 한국영화 배급에서 1인자가 됐다.
그런 그가 칼을 마구 휘두른다면?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한국영화가 들어갈 극장이 없어진다. 14일 개봉하는 자신의 작품 「자귀모」가 그를 시험했다. 직배사 외화는 못나가겠다 버티고, 그렇다고 잘 되고 있는 또 다른 자기영화「인정사정 볼 것 없다」을 자를 수도 없고. 그래서 그는 다른 배급사(일신창투)의 「유령」자리 6개를 밀고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꿨다. 『한국영화를 위해 배급력을 키우자고 외쳐놓고는 내 것만 챙기면 직배사와 뭐가 다른가』
한국영화 제작자들은 그의 막강한 힘에 불안해 한다.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강우석은 『한국영화끼리 밥그릇 싸움은 해서도,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역시 머리좋은 강우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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