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값에 사고 파는 물건 가운데 매뉴얼이라고 불리는 사용설명서가 없는 유일한 것이 아파트가 아닌가 싶다. 지하철에서 파는 1,000원짜리 손전등에서 부터 요즘 인기있는 놀이기구 요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엔 사용설명서가 있다. 그러나 거금을 주고 더구나 일생을 통해 가장 오래 쓰게 되는 아파트에는 사용설명서가 없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단독 주택의 경우 집장사에 의해 마구 지어진 집이 아니라면 사용설명서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설계 도면이 있어 요긴하게 쓰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가전제품에 이상이 생긴 경우라면 애프터 서비스를 요청하면 그만이다. 해당업체는 타사와의 경쟁에서 한치라도 앞서가기 위해 달려와 소비자의 불만을 해소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파트의 경우 욕실의 변기가 막히거나 주방이나 상하수도, 개별 난방 설비에 이상이 생기면 느리고 더딘 관리사무소 대신 보수센터를 찾느라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용도 상당히 든다.
만약 아파트의 상하수도며 전기설비나 난방장치에 대한 차근한 설명이나 그림이 그려진 사용설명서가 있다면? 별도의 돈을 들이지 않고 사용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것은 제외하고더라도 사용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조목조목 나누어 설명한 사용설명서만 있다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어지간한 불편은 전등을 갈아 끼우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어려운 시기에 짜임새 있는 가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라도 사용설명서가 있는 아파트를 생각해 볼 때다.
박철수/공학박사.住公주택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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