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고위 공직자들의 집무실 서랍이 털렸다. 9일 대전 중부경찰서에 구속된 한 절도범의 진술에 국민은 분노할 기력마저 잃어버렸다. 공직자들의 서랍과 장롱과 김치냉장고는 아무리 써도 재물이 줄지않는 화수분이란 말인가. 어떻게 된 세상이기에 그들의 사무실과 집은 뒤지기만 하면 수천 수백만원의 현금과 유가증권이 쏟아져 나온단 말인가.절도범이 고위공직자들의 서랍 몇개를 털어 2억 몇천만원을 챙긴 사실은 얼마전 전북 도지사와 수도권 경찰서장들의 집에서 쏟아진 달러와 현금다발에 놀란 국민의 가슴에 또 한번 충격을 주었다. 도둑을 맞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일이나, 피해액수를 줄이려고 애쓰는 공직자들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신창원과 김강룡에게 털린 사람들과 똑같은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시청 국장실 서랍에서 나왔다는 2억원이 넘는 유가증권에 대해 당사자는 『공무원생활 32년동안 맞벌이로 모은 돈에다 유산까지 포함된 것』이라며 도난신고는 물론 재산등록까지 한 돈이라고 해명했다. 납득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의혹을 떨쳐버리기에는 미흡하다. 그가 경찰에 신고한 도난액수는 1억60만원 뿐이었다. 그 큰 돈을 사무실에 둔 이유에 대해서는 『유럽여행중 아내와 아들이 출근하는 낮시간에 집이 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하기위해 은행에서 찾아 보관해 온 것이라면서도 당좌수표와 어음 채권 등이 섞여있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조차 신고하지 않았다. 피해사실이 드러난 뒤 돈의 출처에 대한 해명도 옹색했다. 몇십만원 단위로 여러개의 봉투에 들어있는 돈을 생활비라느니 위로금이라느니 하고 변명해 봐야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또 피해신고를 했다가 그 사실이 알려져 당하게 될 피해가 더 두려웠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 시중민심이다.
범인이 경찰에서 한 말은 이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서랍속에서 나온 돈은 대개가 봉투속에 든 만원짜리 현찰이었으며, 남에게서 받은 돈일 것이므로 신고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절도범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돈이 귀하고 아깝기는 공직자들이라고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하물며 몇백 몇천만원을 잃어버리고도 숨기기에 급급하는 풍조는 우리 공직사회가 그만큼 부패했다는 증거다. 경찰은 사건의 파장이 커질 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수사로 피해액의 뇌물성 여부를 가려 관련자들을 처벌함으로써 공직사회 기강 확립에 일조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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