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에 만들어진 「콰이강의 다리」는 태평양 전쟁을 다룬 기억에 남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영화 장면은 몰라도 주제가 「콰이 마치」는 누구라도 쉽게 휘파람으로 따라 부른다. 영화에서 휘파람에 맞추어 늘어서는 대열은 싱가포르와 자바 전선에서 붙잡혀온 연합군 포로들.소설가 정동주씨(사진)가 「콰이강의 다리」 건설과 그 이후를 다룬 장편 소설 「콰이강의 다리」(한길사 발행)를 최근 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파란 눈의 서양포로들이 아니라 이 건설 현장에서 최후를 맞은 한국인 군속 요원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5,000여명의 군속요원을 징발했다. 이들 가운데 영어에 능통한 300여 명이 콰이강 다리 건설에 투입됐다. 이들은 조선인이지만 창씨개명을 했기 때문에 일본군으로 비쳐졌고 전쟁이 끝난 뒤 일본군 전범으로 체포돼 24명이 사형, 27명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비극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들은 2번의 국제재판을 받은 끝에 일본으로 송환됐지만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무국적자로 전락했다.
소설은 이들의 비극적 삶을 실존인물인 김덕기(본명 홍종묵·洪鍾默)의 삶을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 김덕기는 「도큐야마 마츠오」라는 이름으로 1942년 통역 군속요원으로 징발돼 콰이강 다리에 투입된 사람.
그가 징발된 시점을 시작으로 콰이강 다리 건설,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 과정, 그리고 24명의 한국인 사형 선고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국적을 찾는 소송과정 등이 그려져 있다.
정씨는 92년 홍씨를 만나 사연을 듣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조선인이면서 일본인이라는 두 가지 국적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도 두 나라의 무관심 속에 무국적자로 전락했다』며 『홍씨의 한국인 복권은 우리의 식민지 체험을 정리하는 일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