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1,900만명 시대를 맞은 이동전화가 전화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일반전화와 달리 이동전화를 대상으로 한 전화폭력은 별다른 대응책이 없는데다 경찰과 이동통신서비스 업체들마저 「발신자추적」등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기 때문이다.최근 서울 K경찰서 형사과를 찾은 이동전화 이용자 김모(23·여)씨는 허탈하게 발길을 돌렸다. 한달여 동안 계속된 음란전화를 신고하려고 어렵게 경찰서를 찾았지만, 담당 경찰관은 『수사개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김씨를 그냥 돌려보냈다. 김씨는 이에 앞서 자신이 가입된 통신서비스업체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답은 『경찰 신고 접수증과 통화내용 녹취 테이프를 가져오면 「발신자 표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끝이었다.
김씨의 경우처럼 전화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이렇다할 해결방안을 찾지 못해 이동 전화기 스위치를 꺼두거나 아예 전화번호를 바꿔버리는 피해자들도 많다. 9일 한국성폭력 상담소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동안 접수된 전화폭력 피해 상담건수 100여건중 50%이상이 이동전화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화폭력의 대상이 점차 이동전화 이용자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의 대책은 발신자의 전화번호를 수신자의 이동전화에 표시해주는 「발신자 표시서비스」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경찰서로부터 신고 접수증을 받아와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경찰이 신고 접수증을 발부해주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한 경찰관계자는『조사에 착수하더라도 증거를 포착하기가 힘든데다 처벌마저 힘들어 피해신고 접수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작 「발신자 표시서비스」를 받더라도 기술적인 한계때문에 실효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동통신업체와 한국통신, 그리고 타 이동 통신업체간의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같은 업체의 이동통신기기로 걸려온 전화번호만이 표시되기 때문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피해자들에게 별 실효성이 없으니 전화번호를 바꾸라고 권고하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조중신(趙重信)상담부장은 『일반전화에 비해 이동전화는 전화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통신서비스업체가 문제해결에 발벗고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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