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현종씨가 최근 시집을 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갈증이며 샘물인」. 7번째 시집이다. 올해 나이 예순. 대학을 졸업하던 65년, 은사 박두진 선생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지 34년이 됐다.문학과지성사는 연말 이번 시집을 더해 모두 400여 편의 시를 한데 모아 시 전집을 낼 계획이다. 아직도 왕성하게 글을 쓰고, 몸 담고 있는 대학에서 정열적으로 강의할 정도로 건강한 상태이지만, 어쨌든 그는 올해 그의 문학 인생을 한 번 총정리해 볼 계획이다.
『내 시의 키워드는 공기(바람)와 불과 물과 흙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물질을 구성하는 네 가지 원소다(그는 철학과 출신 국문과 교수다). 공기는 「숨」 또는 「바람」이라는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숨은 억압이라든지 답답함, 또는 마음의 상태와 연관돼 있다. 불은 정열이나 욕망을 다룰때, 물은 무거움이나 우울, 욕망, 그중에서도 젖어 있는 어떤 것을 다룰 때 주로 쓰이는 이미지이다. 최근에 와서 생태계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흙이나 나무, 새, 꽃 같은 자연, 때로는 우주의 모습까지도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시인은 이런 이미지들을 자잘한 일상에서 포착해 말 장난처럼 가지고 놀다가, 극단으로 몰고 가 시의 감동을 자아낸다. 「복도에서/ 기막히게 이쁜 여자 다리를」 본 뒤 그 다리 생각에 빠진 자신을 보고 「시상(詩想)에 잠기셔서」라고 누군가 말하자, 그 속에서 시인은 「우리의 고향 저 원시(原始)가 보이는/ 걸어다니는 창(窓)인 저 살들의 번쩍임이/ 풀무질해 키우는 한 기운의/ 소용돌이가 결국 피워내는 생살/ 한 꽃송이(시)를 예감」한다고 읊었다.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영원한 건 슬픔뿐이다.// 덤덤하거나 짜릿한 표정들을 보았고/ 막히거나 뚫린 몸짓들을 보았으며/ 탕진만이 쉬게 할 욕망들도 보았다.// 영원한 건 슬픔 뿐이다」 또 다른 극단의 한 장면에는 이런 감동도 있다.
그의 시는 갈수록 쉬워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초기시의 복잡하던 언어 구사는 진작 단순해졌지만 이번 시집에서 그는 말 그대로 마음에서 솟아나는 대로 시를 썼다. 표제시나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간다/ 밥 먹고 잠자러/ 들어간다// 오늘은 그런데/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잤으면 좋겠다/ 오늘이 날은 날인 모양이다」로 끝나는 「오늘」 같은 시들이 그렇다.
이런 시의 모습은 그가 시를 쓰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시선집 「이슬」에서 그는 자신의 시세계를 설명하면서 『확실한 건 내가 시쓰기를 좋아한다는 것, 그러나 한참 안쓰면서도 지나치게 느긋하다 할 만큼 지낼 수 있다는 것,…시가 익어 터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는 것,…시쓰기가 어려운 건 에누리없이 자기가 산 만큼 쓰여지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안다는 것 등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근자에 들어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도시의 문명, 문명이 파괴하는 자연과 환경에 대한 문제들을 그가 자주 소재로 다루는 것도 몸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생태계 오염을 어찌할 수 없다고 느끼는 그는 이제 문명의 포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래서 자연과 더욱 가까이 하나가 되기 위해 「탈출」을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는 지금 가르치는 학교(연세대 국문과)에서 정년을 마친 뒤 서울이 아닌 그 어디로, 자연의 한 가운데이면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어떤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 한다. 옮겨서 계속 시 쓸 꿈을 꾸고 있다.
정현종 시인은 『젊은 시인들이 건강함의 미학을 발견하려고 좀더 애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꽃 深淵
지난 봄 또 지지난 봄
목련이 피어 달 떠오르게 하고
달빛은 또 목련을 실신케 하여
그렇게 서로 목을 조이는 봄밤.
한 사내가 이 또한 실신한 손
그 손의 가운뎃손가락을
반쯤 벙근 목련 속으로 슬그머니 넣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으나 달빛이 스스로 눈부셨습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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