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와 태풍으로 바짝 긴장했던 지난 주,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작은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촌지교사 뇌물죄 기소. 대구지검이 15만원의 촌지를 받은 초등학교 교사를 뇌물죄로 기소했다는 내용이다. 4년전 사건 처리가 새삼스레 뉴스가 된 것은 촌지교사에 대한 뇌물죄 적용이 처음이기 때문이다.법 앞에 우리 국민 모두가 평등한가. 이 뉴스는 이런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조건이 붙은 돈을 뇌물로 본 검찰의 판단은 옳다. 그러나 그 교사가 받은 돈의 백배 천배를 받은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검찰과 사법부와 소속기관에서 어떤 처분을 받고있는지 따져보면 우리의 법과 제도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운위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퇴출대상 은행장에게서 4,500만원을 받은 어느 광역시장이 7월말 불구속 입건으로 처리되었다. 뇌물죄가 아니라 처벌규정이 약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였다. 선거때 받은 2,000만원은 정치자금, 뒤에 받은 2,500만원은 떡값이란다. 정치자금이란 것도 후원회를 통해 영수증 써주고 적법하게 받은 것이 아닌데, 시장으로서 받은 돈도 뇌물이 아니라니 누가 그 처분을 옳다 하겠는가.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못해 무력하기만 하다. 그들을 처벌하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새 정권 출범후 사정대상이 된 수많은 정치인 가운데 구속되었던 사람은 의원직을 갖지 못했던 한 사람 뿐, 나머지는 모두 불구속 입건이다. 그들이 받은 돈은 최저 3,000만원, 많은 경우 33억원을 넘는다.
불구속기소로 재판에 회부된 그들이 법원의 출정요구를 번번이 묵살하는데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는 모양이다. 설혹 구속이 된다해도 얼마 안가 형집행정지나 보석 등으로 모두 풀려난다. 한보사건을 필두로 근년의 굵직굵직한 뇌물사건에 관련된 정치인중 지금까지 복역중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사와 재판과정, 자체징계나 사면 등을 통해 비리공직자들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을 혼란시킨다. 형사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87년부터 95년까지 9년간 뇌물공무원 기소율은 62%에 불과했는데, 재판과정에서 64.6%가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으로 풀려났다.
징역 또는 금고형은 20%를 약간 넘지만, 대다수가 1년 안팎이고 3년 이상은 1%도 안된다. 법원측은 『그들이 소속기관에서 징계처분을 받았고, 공직에서 퇴출될 것이므로 재범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법정형량보다 관대하게 처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리공무원 징계율은 극히 미미하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상반기 국정심사평가 자료에는 징계를 받은 비리공무원은 7.5%에 불과하다. 그나마 파면 해임같은 중징계는 극소수고, 대부분이 견책 감봉 주의 정도이다.
이런 솜방망이같은 처벌도 미안하다는 것인지, 때만 되면 대통령은 그들에게 사면 혜택을 주어 국민에게 배반감과 박탈감을 심어준다. 집권당이 사면의 원칙을 어겨가며 형이 확정되지 않은 180명의 사면을 추진하는 것은 노골적인 정략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 속에는 5년동안 나라일을 농단한 전직 대통령 아들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그의 형이 확정된 것으로 꾸며 국무회의 사면건의 의결 다음날(11일) 소환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재수감 없이 사면하려는 각본을 짜놓고 있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부패사범이나 권력형 범죄자는 제외하는 것이 선진국의 관례다. 억울한 양심수나 모범적인 일반재소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사면제도 본래의 취지다.
사람을 죽인 탈옥 무기수를 의적시하는 사회풍조가 삐딱한 사람들의 반항심리 때문만은 아니다. 권력자들의 범죄를 엄정히 다스리지 않으면 세상을 큰도둑의 소굴로 보려는 서민들의 박탈감과 냉소병은 치유할 길이 없다. 이 병이 깊어지면 개혁도 새 밀레니엄도 공염불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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