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만 예술? 아니면 자아도취.미사여구의 성찬이다. 최근 한국영화는 수작, 아니면 뛰어난 예술영화들 뿐이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에는 「작가주의의 고집」와 「예술정신」이란 훈장을 걸어주고, 스타일리스트의 영화에는 뛰어난 영상미학과 최고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적어도 우리끼리는 한국영화가 상업성은 물론 예술성까지 이제 완벽해졌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가 돼 버렸다.
그때문일까. 최근 한국영화의 해외영화제진출과 수상도 많아졌다.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은 베니스영화제(9월1~11일), 조문진 감독의 「만날 때까지」은 몬트리올영화제(8월27~ 9월6일) 경쟁부문에 각각 올랐다.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도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작품상 수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경쟁작에 올랐다.
캐나다 벤쿠버영화제(9월24~ 10월10일)에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것 없다」등 무려 12편의 장·단편이 초청받았다. 5월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에 이어 호주 멜버른영화제에 대상을 받은 송일곤의 「소풍」과 베니스영화제에 경쟁에 오른 안영석의 「냉장고」등 단편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우리영화는 이제 세계적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그것도 단 1년만에.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내 찬사와 해외영화제 진출 사이에 엄청난 모순이 발견된다. 「거짓말」은 등급보류판정을 받은 작품이고, 「만날 때까지」는 일찌감치 제작을 끝내 놓고도 극장을 잡지못해 개봉을 못하고 있는 영화다. 시사회를 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다른 영화를 제치고 이 두 작품이 A급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나가게 됐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도덕적 기준에 걸려 우리가 못본 작품성을 인정한 것일까. 아니면 이방인의 단순한 호기심일까. 로비 덕분일까. 아니면 우리와 작품을 보는 기준이 다른 것일까. 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2억원을 쏟아부은 「이재수의 난」은 흥행에 참패하고도 당당하다. 감독은 『내 영화는 상업성과 무관하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영화계는 그의 영화를 위대한 작가주의 정신의 산물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그런 작가주의를 베니스영화제는 거절했다. 박광수의 국내 평가와 로카르노영화제가 주로 신인 감독의 등용문을 고집하다, 그 권위와 규모가 약화되자, 최근 서너작품까지 만든 감독도 작품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재수의 난」은 초라해 보인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칭송 속에 31일 개봉한 「인정사정 볼것 없다」역시 베니스는 거절했다. 대신 벤쿠버영화제라고? 비경쟁영화제라는게 뭔가. 부산이나 부천에서 보듯 100편이 넘는 작품들을 마구 끌어모아 한번씩 틀어주는 것이 고작인 영화 슈퍼마켓 수준이다. 국내 평가를 감안하면 칸영화제 본선에도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가 영화를 잘못 보고 있는지, 외국영화제가 진짜 좋은 우리영화를 몰라주는 것인가.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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