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올가」(OLGA)가 수도권을 빠져나가던 3일 밤 10시. 올가의 진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기상청 기자실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날 오후 6시께 황해도 해주 내륙에 상륙할 예정이라던 태풍이 여전히 인천 앞바다에 머물고 있다는 속보가 방송에서 나오자 분위기가 다시 긴장됐기 때문이다.태풍이 한반도 상공에 형성된 강한 제트기류를 타고 무려 시속 45㎞의 빠른 속도로 북진하는 바람에 비가 덜 내려 피해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는 보도가 나간 뒤였다. 때마침 서울에는 초속 24m의 강풍까지 불어닥치자 태풍의 정확한 위치를 묻는 시민들의 전화가 기상청과 언론사에 빗발치기도 했다.
「올가」가 오후 9시 현재 강화 앞바다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문승의(文勝義)기상청장이 기자실로 자료를 들고 내려와 장황하게 설명했다. 태풍이 상륙하는 과정에서 지면과 마찰해 진행속도가 시속 35㎞로 떨어지고, 제트기류도 세력이 둔해져 북상이 잠시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청장은 『태풍이 일시 주춤했을 뿐 밤 11시 예정대로 황해도 옹진반도에 상륙했다』고 말했다. 태풍이 1분1초라도 빨리 빠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역력했다.
이날 오후 기상청에서는 태풍이 예상보다 적은 비를 뿌리고 발걸음을 재촉하자 안도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언론사의 예보실 사진취재도 거부할 정도로 긴박했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73년의 「리타」나 94년의 「더그」가 지그재그나 고리형태로 마구잡이로 올라와 예보관들을 애먹인 것에 비하면 「효자태풍」이라는 뒷말도 나왔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직후 날씨예보의 새전기를 마련했다던 기상청의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상청은 여전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회부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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