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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일] "인격믿는다" 조용히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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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일] "인격믿는다" 조용히 한마디

입력
1999.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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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뇌리에 남아 나를 일깨우는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27년전 일어났다. 푸른 꿈으로 가득찼던 대학 생활 중에 만난 그 분이 내게 깨우쳐준 교훈은 현재 내 천직의 가장 중요한 좌표가 됐다.대학 4학년때 필수과목으로 보건학을 수강해야 했는데 담당교수님은 첫눈에도 교양과 지성이 흐르는 중년 여성이었다. 자신을 K여고와 S대 출신이며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깐깐하게 보여 『학점 취득이 쉽지 않겠구나』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수강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애쓰는 성실하고 차분한 강의가 진행됐고 강의 스케줄에 따라 첫 시험이 다가왔다. 그런데 시험지 배부가 끝나고 그 분이 하신 말씀은 같은 과 수강생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여러분의 인격을 믿기 때문에 감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의 인격에 모독이 되고, 또 여러분의 인격을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이 말만 남기고는 조용히 강의실을 비웠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였다. 나를 제외한 우리 과 학생들은 모두 강의노트를 주섬주섬 꺼내놓더니 완벽하게 베껴나가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강의실 한 편에서는 그 분을 비웃는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나는 열 문제 가운데 여덟 문제는 자신있게 답안을 작성했고 한 문제는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며 겨우 풀어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문제는 종료시간이 될 때까지 결국 손도 대지 못하고 가방을 챙기고 말았다. 동료들보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 가볍고 산뜻했다.

종강 후 큰 기대없이 시험 성적표를 받아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보건학 성적이 100점으로 A가 매겨져 있었다. 게다가 같은 과 친구들의 성적을 확인해보니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80점에 B로 통일돼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 분에게 항의하러 가기도 했다.

교수님은 항의하러 온 학생들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타이르셨다고 한다. 『양심을 지키지 못하는 지식은 위해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격이 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학생이 갖고 있는 지식은 진짜 지식이 아니라 가짜 지식입니다』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이 말은 지금 내가 내 학생들을 가르치는 금언이기도 하다./주정기·캐나다 토론토공립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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