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변증법/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공저프랑크푸르트대 부설기관으로 1923년 문을 연 「사회연구소」는 독일서 공개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앞세운 첫 단체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벤야민, 프롬, 폴록, 노이만. 그리고 2세대 하버마스와 슈미트. 러시아를 맹주(盟主)로 한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이른바 서유럽 좌파의 진원(震源)이었던 곳. 지금도 많은 정치, 사회, 문화 이론가들이 입에 올리는, 그리고 수다하게 인용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무대였다.
47년 출간한 「계몽의 변증법」은 「사회연구소」 소장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맹장인 호르크하이머와 그보다 8살 아래로 역시 서구 좌파 비판이론의 거장이던 아도르노가 함께 썼다. 책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선보였지만 글이 쓰여진 것은 나치의 광란과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이 거침없던 전쟁 중이었다.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에 빠졌는가」. 책은 이 문제를 철학적인 단상(斷想)의 형태로 풀어나가고 있다. 아도르노는 유대인이었고, 베르톨트 브레히트, 한나 아렌트, 아르놀트 쇤베르크, 토마스만처럼 전쟁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망명객이었다. 사정은 호르하이머도 비슷했다. 고국을 떠난 좌파 이론가들은 계몽이 얼마나 야만에 빠질 수 있는가를 어느 누구보다 절감했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뒤엉켜 들어간 구체적인 역사 형태나 사회제도 뿐 아니라 「계몽」 개념 자체가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고 보았다. 「계몽」이 퇴행의 계기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진보」의 파괴성에 대한 고려가 진보의 적(파시스트)에게만 맡겨진다면, 실용에 눈이 가리워진 「사유」는 지양(止揚)의 힘을 잃고, 결국 진리도 상실할 것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그래서 시민과 서구 문명을 대변하는 최초의 증인을 「오디세이」로 보고 「신화와 계몽의 변증법」을 추적했고, 「문화산업」을 통해 계몽이 이데올로기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또 자칭 계몽한 문명이 「반(反)유대주의」로 어떻게 야만상태가 되었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이 책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유럽 젊은이들의 저항의 이론과 실천, 프랑스 68혁명의 노도와 같은 물결은 결국 이 책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계몽의 변증법」은 서구 비판 지성의 「바이블」 같은 책이다.
호르크하이머(1895∼1973)는 프랑크푸르트대 총장을 지낸 철학·사회학자. 「권위와 가족」 「편집의 연구」 「비판이론」 「도구적 이성비판」 등의 책을 남겼다. 아도르노(1903∼1969) 역시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을 강의했고 오랜 망명생활을 하며 비판 철학과 음악 연구에 몰두했다. 「권위주의의 성격」 「부정의 변증법」 「신음악의 철학」 등을 썼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