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경기 북부지방이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당한 뒤 경기도는 이런 재난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며 수해백서를 내놓았다. 수해방지를 위해 수계별 홍수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수문기상 관측을 체계화하며, 하천의 치수기능을 정비해 저지대 상습침수를 막겠다는 대책이 들어 있었다. 만 3년이 지난 오늘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우선 수계별 홍수경보 시스템은 완전한 공약(空約)이었다. 임진강은 전체 수역의 3분의 2가 북한 땅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변변한 수위측정 시설도 없다. 건교부 직할하천이면서도 정부의 홍수통제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서울지방 국토관리청이 치수대책을 맡고 있다. 물난리가 나면 잠시 떠들썩 하다가 곧 관심권에서 멀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니 수문기상 관측을 체계화하겠다는 그럴듯한 말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치수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무너진 댐과 제방 등 응급복구가 필요한 시설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진척도는 부지하세월이다. 3년전에 유실된 연천댐 보강공사가 올해초에야 착공돼 똑같은 피해를 자초한 일이 잘 말해준다. 큰물이 날때마다 쌓이는 토사로 임진강 하상이 높아져 물이 잘 빠지지 않고, 대부분의 지천들은 하상이 인근 농경지보다 높은 천정천이 돼버렸는데도 준설을 하지않았다. 큰비가 오면 마을로 역류하게 마련이다.
시가지의 물을 뽑아내는 배수시설과 저류시설은 시늉 뿐이다. 동두천시에는 제기능을 갖춘 빗물펌프장 하나가 없다. 파주시에는 4개가 있다고 하나 임진강 둑이 터져 물바다가 되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3년전에 유실됐거나 터진 제방 복구공사도 날림이거나, 필요한 높이만큼 쌓지않아 이번에 아무 구실도 못했다. 작년에 침수됐던 서울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이 또 침수된 것도 구멍뚫린 재난대처 시스템을 드러냈다. 중랑천 지류가 범람한 것이 이유라지만, 집중호우가 예보된 상황에서 시간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었는데도 비상대처에 실패한 것을 무슨 말로 변명할 것인가.
이번 비는 연간 강수량의 반 이상이 며칠 사이에 쏟아졌으니 천재지변이라 할 만하다. 장마전선이 소멸된 뒤 북태평양고기압과 대륙성저기압이 부딪치는 대기불안정 현상으로 인한 국지성 호우가 한반도 여름기상의 한 패턴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럴수록 항구적이고 체계적인 재난대비 시스템이 필요하다. 남쪽에서는 태풍까지 올라오고 있어 전국이 비상이다. 우선 이 위기를 넘기는데 힘을 모으고 앞을 내다보는 튼튼한 수방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