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또 증권시장을 점령했다. 대우쇼크에 시장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명분으로 정부는 대우에 4조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하도록 채권단에 요구했다. 또 증권 투신의 사장들과 은행장들에게 정부정책의 확성기 역할을 하도록 강요, 구시대의 유물로 박물관에나 들어가 있을 법한 「관제 결의대회」가 오랜만에 재등장했다.일부에서는 증시에 「12·12 사태」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같다고 꼬집고 있다. 79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벌인 하극상의 쿠데타 망령이 아니다. 그 10년 뒤인 89년 폭락하는 증시를 받치기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 경제적 12·12사태의 망령이다. 이번에도 절차는 다르지만 발권력을 동원하기로 한 것은 똑같다.
결과적으로 시장이 크게 교란되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부의 「주가 떠받치기」로 겉으로는 시장이 유지되고 있으나 대우변수는 바뀐 게 없다. 강요된 안정 탓에 잠복했을 뿐이다.
일반투자자들이 한숨을 돌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투신권에 존재하는 23조5,000억원의 대우채권이 여전히 시장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이중에서 어느 것이 졸지에 휴지조각으로 변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를 당국이나 일반국민이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결코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며 단지 뒤로 미뤄진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대우조치들을 세부적으로 살펴 보면 문제투성이다. 한 은행장은 당국으로부터 대우에 신규로 지원하라는 자금규모를 할당받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을 걷어차며 『이게 정책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정부가 금방 세금으로 메꿔줄 것도 아니면서 자금을 지원하라는 것은 「폭력적인 월권」이다. 설혹 나중에 세금으로 일부를 채워준다 하더라도 재정자금을 지원받은 은행으로 낙인찍혀 신뢰도에 결정적인 금이 가버리고 만다. 그 손실은 아무도 만회해줄 수 없다.
시장 자체가 깨져서는 안된다는 「시스템 방어」 명분으로 어떤 조치든 다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정부의 환매자제 요청을 등에 업고 일부 금융기관이 투자자의 환매요구를 아예 거절한 것은 사정이 오죽 딱했을까마는 차라리 한편의 소극(笑劇)같다.
투신사의 자금은 대부분 투자자들이 맡겨놓은 것으로 투신사의 고유자금과는 엄연히 다르다. 바로 투자자의 재산이다. 이 돈이 마치 제 돈인양 투신사들이 정부의 요청대로 대우채권의 만기를 6개월 더 연장하는데 쓰기로 결정한 것도 「월권」이다. 투자자들이 속고 있다고 비난해도 당국이나 투신사들은 변명할 말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대우채권은 리스크가 높은 만큼 다른 기업의 채권에 비해 수익률이 5%가량 높았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대우채권에 투자했다가 별탈 없으면 1년에 12%가량의 높은 수익을 챙기는 반면 리스크가 커 원금을 날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다. 그런데 당국은 원금을 날릴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돈을 채권에서 회수, 시장이 곤두박질칠까봐 대우그룹의 계열사들을 이리저리 묶어 다 팔겠다는 방침을 슬쩍 흘렸다. 계열사 중에서 청산돼 원금을 떼이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은근히 암시한 것이다.
시장의 안정을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최악의 수(手)다. 정부가 앞으로 이 약속을 지키면 대우채권 투자자들은 수지맞는다. 원금을 떼일 리스크가 전혀 없이 남보다 두배가까운 수익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되면 당국자의 말을 믿고 대우채권을 마지막까지 보유한 투자자만 바보가 되고 돈을 날린다.
정부의 시장개입 자체를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다. 마치 계엄군이 진주하는 듯한 그 방식이 문제다. 시장은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다. 우악스럽게 규칙마저 무시하면서 다뤄서는 결코 안된다. 세련됐으면서도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새 방식의 등장을 대망해왔건만 환란 전에 비해 한걸음도 더 나아지지 않은 게 안타깝다.
정부가 이번에 이미 저지른, 계엄군과 같은 행태를 시장으로부터 사면받는 길이 한가지 남아있다. 계열사 매각 등 대우처리를 조속한 시일내에 개혁적 차원에서 투명하게, 엄정하게, 철저하게 마무리하는 길이다.
/홍선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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