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2세」, 「마징가 제트」, 「캔디 캔디」.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라면 누구든 기억할 법한 「명작 만화」들이다. 하지만 이 만화들이 모두 해적만화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단속과 만화 출판사들의 강경대응으로 최근 들어서는 많이 줄었지만 해적만화는 여전히 만화시장의 30~40%를 차지하고 있다.만화 전문지 「오즈」 8월호는 기획 특집 「대한민국 해적만화 출판기」에서 우리나라 해적만화의 역사와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해적만화의 역사는 크게 세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모든 해적만화가 「국산」으로 둔갑해 독자들을 만났던 70~80년대, 이른바 「500원 시대」로 불리는 90년대 초반, 그리고 정식으로 판권계약을 맺은 번역 출판물에 밀려 그 기세가 한 풀 꺾인 90년대 중반 이후에서 현재까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적판은 한국전쟁 직후 출간된 「밀림의 왕자」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원작이 일본의 「정글소년 케니아」인 이 작품은 원작의 화면을 일일이 해적작가의 손으로 다시 그려내는 이른바 「베껴 그리기」 기법을 도입한 작품이었다.
이후 70~80년대 해적만화는 대개 베껴 그리기와 원작자를 한국 사람으로 바꿔치기하는 작가 위조를 통해 일본만화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긴 채 유통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우리나라에 순정만화 붐을 몰고 왔던 「캔디 캔디」다. 또 80년대는 아직 저작권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해적만화가 버젓이 정부의 심의필 도장을 받아 합법적으로 출판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90년은 한국 만화사에 매우 중요한 해로 기록된다. 일본만화 「드래곤 볼」의 해적판 「드라곤의 비밀」이 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서점과 학교앞 문방구를 통한 판매라는 새로운 유통방식에 힘입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이른바 「500원 시대」를 연 것이다. 이 시기 해적만화 출판업자들의 순발력은 일본의 원본 진행속도를 거의 따라잡을 정도였다.
「북두의 권」, 「씨티 헌터」, 「란마」 시리즈 등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작품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한국 시장에 깔려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 「500원 해적판」은 작품의 과도한 왜곡, 만화시장 구조의 부실화 등 많은 폐해를 낳기도 했지만, 만화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대본소 만화를 벗어나 판매 만화 시대를 여는 촉진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서울문화·학산·대원 등 이른바 3대 메이저 만화 출판사를 중심으로 정확한 번역과 뛰어난 인쇄의 질을 자랑하는 만화잡지와 번역만화가 나오면서 해적만화의 전성시대는 일단 막이 내린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식 출판만화 시장에 비해 3배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던 해적만화 시장은 현재 30~40% 정도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저작권 개념이 도입되고 법적 규제가 강화된 것도 해적판 시장 위축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만화잡지 「부킹」의 박성식 편집팀장은 『물론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해적만화는 절대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암시장이 그렇듯, 해적만화 시장은 정상적인 만화시장의 미성숙과 왜곡된 질서를 반영한다. 단속과 검열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만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집중적인 지원만이 해적만화 선진국의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황동일기자 do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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