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1318마당] 변하지 않는 '점수기계 교육'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1318마당] 변하지 않는 '점수기계 교육'

입력
1999.07.30 00:00
0 0

입시라는 선생님 아래에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친구삼아 공부하는 고교생이다. 세상은 넓고 눈 앞에는 높은 하늘이 펼쳐져 있는데 조그만 교실에서 살을 부딪혀가며 공부하는 것이 너무 서러워 탄원서를 올린다.오늘 영어문장 12개와 수학공식 5개를 외웠다. 선생님이 대학가려면 외워야 한다고 해서 이해도 못했는데 무조건 외웠다. 선생님은 분필가루 마셔가며 열심히 수업을 하셨지만 오늘도 시험지 5장 가운데 1장은 따라가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짝꿍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선생님은 시험범위를 위해 진도를 맞춰야 한다고 억지로 5장분량을 모두 끝내셨다.

얼마전 북한이 서해를 침범했다는 보도를 보고 우리들은 야릇한 상상을 했다. 전쟁이 나려거든 기말고사 전에 시작됐으면 하는 황당한 생각이었다. 북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시험이니까.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공부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다만 좀 더 나은 공부방법을 원하는데 그게 안돼 적응이 안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떠들어대고 학력고사도 수능으로 바뀌었다는데 교육현장의 모습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개선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외우지 않으면 점수따기는 불가능하다. 수십년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대학은 외우는 자에게만 열려 있다.

오늘 친구들과 2개월만에 다시 헌혈의 집을 찾았다. 좋은 뜻에서 간 것이 아니다. 봉사점수를 얻기 위해 우리는 정기적으로 헌혈을 한다.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점수를 딸 수 있는 방법이어서 요즘 친구들 사이에 인기다.

몇 달 전부터 시작된 이 점수따기 작전으로 한 친구는 헌혈증서를 7장이나 모았고 나도 2장을 확보했다. 우리는 헌혈을 한 뒤 언제나 너무나 영리한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뿌듯해 했다. 그런데 오늘은 주사바늘을 통해 피가 작은 팩에 채워지는 것을 보니 왜 이리 처량한 지 모르겠다.

/강은희 덕성여고2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