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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수필가 세노가파의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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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수필가 세노가파의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

입력
1999.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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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삶이 답답할 때 무언가를 살짝 훔쳐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그 대상이 우리 주변 사물일 때 특별한 준비는 필요없다. 호기심과 상상력만 있으면 그만이다.일본의 무대미술가이자 수필가인 세노 가파(妹尾 河童)가 쓰고 그린 「펜 끝으로 훔쳐본 세상」은 이처럼 주변의 사소한 사물을 호기심의 눈으로 훔쳐본 책이다. 그의 훔쳐보기는 이들 사물이 실제로는 풍부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중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한국 인도 몽골 등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사소한 물건들」을 찾아 스케치북에 그리고 글로 옮겼다. 여기서 얻은 150여 컷의 펜화와 글을 묶어낸 것이 「펜 끝으로 훔쳐본 세상」.

중국의 제사용 화페, 볼로냐 역에서 파는 도시락, 네덜란드의 훈제 장어구이 포장마차, 한국의 초가와 김치 항아리, 홍콩의 지하철 승차권, 126년 된 영국제 성냥, 덴마크의 쥐덫…. 저자는 발닿는 곳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수집한 사소한 먹거리·볼거리를 독특한 시각으로 소개한다.

홍콩의 지하철 승차권이 재활용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구체적 내용 뿐 아니라 승차권을 사진 찍듯 그려 소개하고, 쥐 잡는 방식이 나라마다 가지각색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덴마크 파키스탄 터기 포르투갈의 쥐덫을 소개한다.

책 속에는 무대미술가라는 저자의 이력답게 물건이나 풍물들이 살아 있는 듯 그려져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대로 그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전하는 대목이다. 영국제 담배갑은 실물 크기로, 저자가 머문 유럽의 호텔 방 안은 마치 천장에서 내려다본 모습 그대로 그려져 있을 정도이다.

저자 세노 가파는 수집광이자 미식가이면서 여행광. 그는 방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글과 그림으로 쏟아낸다. 「가파가 훔쳐본 명사들의 화장실」 등 90년대 들어 계속되는 그의 「훔쳐보기」 시리즈는 일본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무대디자이너로서는 「기노쿠니아 연극상」 「선토리 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번역은 박국영씨가 했으며, 한글 글씨는 서체 디자이너 박호주씨가 맡았다. 펜화가 그려진 표지와 가로가 긴 판형이 특이하다. 서해문집 발행, 8,500원. 책을 읽다보면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관심이 어느 정도 세심한 지, 그의 관심이 얼마나 엉뚱한 지. 유쾌한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서사봉기자

ses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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