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은행 퇴출 로비사건과 관련, 검찰에 구속된 이영우씨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검찰이 밝힌 이씨의 혐의는 김대중대통령이 설립한 아태재단 이사를 사칭해 경기은행으로부터 1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단순사기사건」으로 규정했다가 수사과정에서 이씨가 아태재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자 「정치로비사건」으로 수사방향을 바꾸었다.경기은행이 이씨에게 로비를 부탁했던 것은 그가 아태재단 이사여서가 아니라 그 윗선에 줄을 대기위해서 였던 것같다. 그 윗선은 김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영작씨로 밝혀졌다. 이씨는 자신이 이영우씨를 아태재단 미주지부 이사로 선임했고, 그의 소개로 서이석 전 경기은행장을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이영작씨에 대해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고, 그는 최근 미국으로 떠났다.
검찰은 애초부터 이 사건이 권력주변과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지으려 했고, 은근히 이영작씨를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해 여러 억측을 낳았다. 경기은행 로비사건은 임창열경기지사 부부 구속으로 철저한 수사를 하는듯 하다가 「이영우 미스터리」로 후퇴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정권교체 이후에도 권력형 비리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에 실망하게 된다. 권력형 비리와 부조리는 역대 어느정권에서나 있었고, 정권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권력형 비리는 일반 사건과 달리 그 정치적 파장이 폭발적이어서 정권의 정통성과 존립기반마저 흔들게 된다.
5공시절 전경환씨가 이끌던 새마을운동본부, 6공시절 박철언씨가 주도했던 월계수회, 김영삼 전대통령때 차남 현철씨가 관련됐던 각종 비리 등은 온갖 부작용을 낳았던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들이다. 현 정권이 출범한 후에도 어느 재단의 핵심인사가 강남에 사무실을 열고 은근히 기업인들을 만나고 있다거나, 어느 고위층의 핵심참모가 비리에 연루됐다가 내사를 받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얘기가 나돈적이 있다.
권력자가 아무리 추상같은 불호령을 내려도 친인척 비리와 권력주변의 부조리는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숙주(宿主)가 있는 한 권력형 비리는 기생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경기은행 로비사건을 계기로 권력주변의 사조직 형태의 기구를 차제에 해체할 것을 촉구한다.
이와 함께 권력형 비리가 드러날 경우 일반 사건보다 더 엄격하게 다스려서 일벌백계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권력주변에는 항상 유혹이 따르게 된다. 권력형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한 현 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은 공염불이 되고, 대통령의 권위와 영(令)도 서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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