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인권 운동사를 처음으로 정리한 책 「한국여성인권운동사」(한울·2만원)가 나왔다. 성폭력과 가정 폭력 추방에 앞장서 온 단체 「한국여성의전화」(02_2269_2962)가 창립 15주년(1998) 기념사업으로 1년 8개월의 작업 끝에 펴냈다. 여태껏 정리되지 못했던 여성운동의 역사화·이론화를 위한 첫 작업이다.514쪽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80~90년대를 중심으로 각 분야 여성인권운동의 성과를 연구했다. 성폭력 추방운동사, 아내 구타 추방운동사,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상, 기지촌 여성운동, 매매춘 근절운동, 장애여성운동, 여성 동성애자 운동, 여성관련 국제 인권협약과 여성운동의 8개 장으로 돼있다. 각 장은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현장에서 뛰고 있는 운동가들이 나눠 썼다. 고통받는 여성들의 눈물을 직접 보고 그들을 위해 싸워온 동지들의 글인 만큼 다른 어느 기록보다 생생하다.
이 책의 기획·편집자이자 「기지촌여성운동」 부분을 쓴 정희진(기지촌여성 공동체 새움터 운영위원·여성과 인권연구회 간사)씨는 『사료가 없고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집필자들이 애를 먹었다』고 말한다.운동가들이 운동하는 데만도 힘들어 제대로 정리된 기록을 남긴 게 별로 없고 있더라도 사례의 여성들이 드러나길 꺼려해 가명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이 아주 힘들었다는 것.
그는 이 책의 성과를 『정치·노동 등 공적인 영역에 머물던 인권개념을 사적 영역으로 확장하고, 기지촌 여성이나 여성 동성애자, 여성장애인 등 사회 주류에서 밀려난 주변부의 드러나지 않았던 구체적 운동사례를 밝힌 것』이라고 정리한다.
또 여성운동에 명망가만 있었던 게 아니고 피해 당사자가 직접 나서 싸웠음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그가 전하는 기지촌 여성들의 자발적인 투쟁 사례. 70년대 미군들이 화대 인하를 요구했다. 당시 신발 한 켤레가 10달러, 그 값으로 화대를 내리라는 주문에 기지촌 여성들은 「우리는 신발이 아니다」라며 싸웠다.
「여성주의는 여자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믿음이다」라는 냉소적 표어가 있다. 그동안 인권 개념이 남성중심으로 해석돼온 현실을 비판하는 말이다. 예컨대 매맞는 아내가 집을 탈출하면 가정 파괴로 비난받고,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가 불거지자 민족의 수치로 여겨지기도 했다. 여성 개인의 인권보다는 집단을 내세워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태도다. 이 책은 여자도 인간이며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음을 웅변한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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