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내곡동사무소 건물 뒤편으로 200m가량 들어가면 견공(犬公)들이 모여사는 「개 고아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공터 한켠에 보도블록과 철망 으로 엉성하게 엮어 만든 12평 규모의 개고아원에서 20여 마리의 주인없는 개들이 주민과 동 직원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개고아원 원장」으로 불리는 동사무소 행정차량 운전기사(기능직 9급) 김재원(金才元·45)씨는 97년 4월부터 거리에 방치된 개들을 모아 이곳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운전기사로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다보니 차에 치여 부상입은 개, 먹이를 찾아 쓰레기더미를 마구 파헤치는 개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시민안전과 미관상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 개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씨는 방견들을 무조건 차에 싣고 동사무소로 데려왔고 동장 및 직원들과 고민하다 우선 비만 피할 정도의 개집을 만들기로 했다. 급조한 개집 3개로 시작한 게 어느덧 20여칸으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방견을 직접 데려왔지만 이젠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가며 맡겨지거나 새끼를 낳았을 때 사육을 위탁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개들의 종류도 많아져 잡견에서부터 요크샤테리아 푸들 포인터 등까지 다양하게 모였다.
고아원 경호는 낮에는 취로사업 근무자가, 밤에는 고아원 식구중 가장 큰 개인 아프간하운드를 밖에 묶어 놓고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다. 서초구청 구내식당과 인근 식당에서 나온 음식찌꺼기가 주식이고 간간히 통닭집에서 큰 마음먹고 보내주는 닭고기가 특식. 또 인근 동물병원 수의사가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해주고 예방약도 투입해 모두가 건강히 자라고 있다.
고아원 설립 당시에는 김씨가 음식물 배달과 개목욕까지 도맡았지만 이젠 동직원과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앞다퉈 자청, 총감독 역할로 지위가 격상됐다.
『개고아원 소식이 알려지자 키우던 개를 맡기거나 방견의 위치를 알려오는 신고가 급증했습니다. 또 자기가 기르겠다고 요청하는 주민도 늘게 됐지요』
2년여동안 김씨 손을 거쳐간 「고아 개」들은 모두 115마리. 지난 20일 분양된 11마리까지 합해 93마리가 새 주인을 찾아갔다. 단 새 주인에게 인계하기앞서 김씨는 항상 『잘 키우겠다』는 각서를 받는다. 이날 분양식에도 「동물사랑 선서식」이 어김없이 거행됐다. 매매행위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김씨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직접 개를 길렀지만 서울이주 뒤 개를 기르지 못해 아쉬워 하던 중 결국 직장근처에 개고아원을 차리게 됐다. 공무원생활은 91년 서초구청 청소과 직원으로 처음 시작했다. 김씨는 기르던 개를 주민에게 나눠줄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그는 진정한 「동물 애호가」이자 「개들의 아버지」이다.
염영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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