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 김종필(金鍾泌)총리 박태준(朴泰俊)자민련총재의 21일 청와대 회동으로 공동여당 합당을 통한 신당 창당설은 일단 잠복하게 됐다. 신당 창당설의 부침 속에서 여권 핵심부는 「내각제 개헌 유보」를 얻어냈지만, 주요 현안을 다루고 추진하는 방식과 능력에서 중대한 결함을 드러냈다.무엇보다 실천 보다 말이 앞선다는 사실이다. 분위기와 여건이 성숙하지도 않았고, 내밀한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신당 창당의 시나리오만 난무했다. 밀실에서 논의하지 않고 공론화를 통해 추진하는 방식이라는 해명도 있지만, 중대사안을 추진하는 데는 최소한의 기초작업을 선행한 후 구상을 노출해야 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특히 여권의 일부 고위인사들이 사안의 경중을 가리지않고 보안해야할 사안마저 공개하는 행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대통령과 김총리의 17일 워커힐 만찬 회동. 김대통령이 신당 창당의 운을 떼고 김총리가 유보적 태도를 취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회동은 이틀만에 드러났다. 이 사실은 공동여당의 극소수 핵심들만 알고 있었는데도 보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이 앞서는 사례는 지난해에도 여러차례 있었다. 야당의원 영입이나 사정문제를 놓고 여권 고위관계자들의 말은 한참 앞서나갔다. 하지만 정계개편은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고, 경색정국만 장기화했을 뿐이다. 비리 정치인 사정도 시끄럽기만 했지 방탄국회라는 벽에 부딪혀 뇌물혐의 의원들을 한 명도 구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현안의 공개시점이 이르냐, 늦느냐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설익은 현안들이 통제없이 흘러 나온다는 사실은 여권의 안정성을 의심케하며 가뜩이나 어수선한 정국을 더욱 혼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욱이 국정에는 정치현안 외에도 안보 외교 정보 등 정말 보안이 필요한 분야가 많다. 만약 정치관련 정보를 한건주의식으로 흘리는 사람들이 여권내에 많다면, 국가의 사활이 걸린 안보와 외교정보를 그들에게 맡겨도 되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