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金鍾泌)총리가 20일 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긴급 소집한 자민련 총재단회의는 수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의 출입을 철저히 봉쇄, 회의내용은 물론 분위기조차 감지하기가 힘들었다.참석자들은 회의가 끝난 뒤 한결같이 『김총리가 21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것을 밝힐것』이라고만 말할 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김총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비밀회동 및 정계개편설에 대해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손을 저었으나 오후에는 작심한 듯 회의소집 및 21일 기자회견계획을 밝혔다.
이때부터 총리실은 물론 청와대, 국민회의까지 회의소집배경과 기자회견 내용을 파악하기위해 부산했다. 회의에 앞서 관계자는 『김총리가 연내 내각제 개헌이 어려운 사정을 밝히되 신당창당 등 정계개편문제에 대해서는 「불가」라는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운을 띄웠다.
이날 밤 총재단회의에는 박태준(朴泰俊)총재와 김종호(金宗浩) 박철언(朴哲彦) 박준병(朴俊炳) 김모임(金慕妊)부총재, 강창희(姜昌熙)총무, 구천서(具天書) 변웅전(邊雄田) 김학원(金學元) 이양희(李良熙) 김광수(金光洙)의원, 조영장(趙榮藏)총재비서실장 김용채(金鎔采)총리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김총리는 노기를 띤채 『합심해서 정권을 잡았는데 의석이 적다고 스스로 너무 왜소해 지고 있다. 당내 화합이 왜 이리 안되냐. 김용환(金龍煥부총재 사퇴가 왜 일어났느냐』며 강하게 질책했다.
김총리는 17일 김대통령과의 극비회동사실이 보도된 것과 관련,『대통령 만나 식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확인해준 바 없는데 누가 흘리느냐』고 역정을 냈다.
김총리는 또 『안팎에서 이러면 나는 설 곳이 없다』며 『총리직을 그만두고 철수하겠다. 내가 총리직에 연연하는 것 아니다』고 총리직사퇴의사까지 밝혔다. 이에 강창희총무는 『공동정권을 깨는 것을 감수할 각오로 나가야 한다
』고 동조했으나 나머지 참석자들은 총리직사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총리는 10시 30분쯤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나머지 참석자들은 계속 내각제개헌시기와 신당창당문제에 대해서 난상토론을 벌였다.
김총리는 이날 자신의 표정을 읽어내려는 참모들과 언론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마친 뒤에는 아예 공관으로 가버렸다. 김총리의 노기는 이날 오전 총리집무실에서 전화로 자민련 박태준총재에게 거칠게 항의한데서도 엿보인다.
김총리는 이날 오전 박총재에게 『왜 하지도 않은 얘기(신당창당합의)를 사실인양 공개했느냐』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박총재가 오후 총리공관으로 급히 찾아갔지만 김총리는 전화통화 때보다 훨씬 격앙돼 있었다는 후문이다.
총리실의 한 간부는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이미 신당창당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인양 말하고 있지만 김총리의 의중은 전혀 아닌 것 같다』며『김총리가 비밀회동에서 신당창당에 합의했다면 이렇게 화를 내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총리의 노기가 「천기누설」때문인지 아니면 국민회의가 기정사실로 몰고간 정계대개편에 대한 분명한 거부의 뜻인지는 측근들조차 자신있게 판단하지 못했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김총리의 의중을 감(感)으로 눈치채온 총리실은 대부분 후자쪽에 무게를 더 두었다.
청와대가 비밀회동에 대해 『정치현안에 대해 폭넓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설명했음에도 김총리가 굳이 『정치현안 얘기는 안했다』고 공개적으로 부인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