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옥수 신창원은 5월3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S빌라의 김모씨집에 침입, 12시간의 인질극을 벌이며 2억9,000만원원을 털었지만 피해자는 이 사실을 끝내 숨겼고, 신도 『돈을 주면 신분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고 버텼다. 피해자와 범인사이에는 일종의 「신사협정」이 맺어져 있었던 것이다.더구나 신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 않았으며 김씨의 부인은 『당신이 신창원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사람을 해치지는 않으니까…』라며 안도했다는 후문이다. 김씨도 경찰조사에서 『오랜 시간동안 신창원과 여러 얘기를 나누다보니 나중엔 「자네」라고 부를 정도로 친해졌다』고 말했다.
검거 후 속속 드러나는 신의 행적을 보노라면 『과연 신이 도망자였나』라는 의구심 마저 든다. 신은 접촉했던 상대에게는 항상 떳떳했다. 탈옥 당일 자신을 태워준 택시기사에게, 도피중 만나온 수많은 여성들에게도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당당히 밝혔다. 「폭력」보다는 「설득」, 「위협」보다는 「동정」이 신의 도피생활 밑천이었다. 결국 신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은 신을 신고하는 대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상생(相生)」의 관계를 선택했다.
그동안 신은 신출귀몰한 도피행적을 보이는 대담성의 소유자로, 반면 늘 여인과 일기장을 곁에 두는 순정의 소유자로 비춰져 왔다. 언론과 출판에 의해 미화된 면은 인정하더라도 신의 이중적인 이미지는 세간에 야릇한 매력으로 다가온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매력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을 감싸고 돌게 한 이유였을까.
『신고해봤자 괜히 공범취급만 받지…』하는 수사기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범죄자와 피해자의 신사협정이라는 기이한 현상을 낳은 것은 아닐까.
/이주훈기자 ju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