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최씨나 김씨가 가문을 이루면서 한 마을에서 300~400년을 살아왔다. 한 마을에서 이처럼 오래 살다보니 마을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어느 것 하나 손때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했다. 나무와 산, 물과 강 역시 선조들의 손길이 닿아있는 것이기에 소중하게 간직해왔다. 새끼 줄을 당기며 놀던 사소한 놀이가 수백년 후 영산줄다리기 같은 훌륭한 전통문화로 자리잡은 것도 한 지역에 오래 살던 「붙박이 문화」때문이었다. 붙박이 문화가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생태적이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문화로 이끈 것이다.하지만 지금 우리의 주거문화는 어떠한가. 한동네에서 20년 넘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차피 또다른 지역으로 이사가야 하는 도시생활에 이웃과 그다지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도, 마을 일에 특별히 신경써야 할 이유도 없다. 물론 이웃과 함께 하는 놀이문화나 동네문화가 자리잡을 여지도 없다. 동네의 샛강이나 개천이 오염돼도 쓰레기가 쌓여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마을 공동체가 없어진 것이다. 붙박이문화에서 떠돌이 문화로 변한 것이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다. 시멘트 덩어리를 우뚝 세우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과 사람, 환경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고려하고 지어야 한다.
현재의 주거건축문화는 개인주의적 핵가족을 토대로 철저히 경제중심적으로 계획돼 있다. 그러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들은 돈이 아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웃을 만나고 싶다. 그들을 중심으로 동네 환경개선활동, 같은 아파트 주부들끼리의 공동 육아활동, 교육문제에 대한 공동해결 노력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건축물은 반(反) 공동체적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동네, 따뜻한 이웃을 만들고, 궁극에는 삶을 바꾸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곳이 많다.
안양의 한 시민단체가 벌였던 동네 가꾸기 운동이 대표적 예. 우리 동네의 문화유적을 발굴하고 생태보존지역을 찾아가고, 마을의 어른을 찾는 「우리 동네 알기 운동」. 이를 통해 훌륭한 문화 유적과 환경적 가치를 지키고 재현하는 「우리 동네 지키고 가꾸기 운동」, 고장의 붙박이가 돼 지역을 지키는 주체가 되자는 「우리 동네 일꾼 되기」운동 등을 통해 떠돌이의 삶을 붙박이의 삶으로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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