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19일 공개한 탈옥수 신창원의 일기장 3묶음(완결편 1·습작용 2묶음)에는 경찰의 검거망을 피한 상황과, 도피기간 중 느낀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 개인성장사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탈옥수인 한 범죄자의 사회와 경찰에 대한 적개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다음은 일기장 일부.◆도피상황1
98년 7월16일 수서에서는 경찰들의 총구 안전장치가 안돼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판단이 서질 않았고 빈틈을 노리고 있는데, 좀 뚱뚱한 경찰이 눈치가 빨라 허리를 붙잡았다. 몸싸움 중에 내가 총을 빼앗았는데 노리쇠가 뒤로 당겨지지 않았고, 벽쪽을 향해 발사를 해봤는데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 권총 쇠줄이 경찰의 허리띠에 연결돼 있어서 다시 그 권총을 뺏고 뺏(기)는 상황이었다.
다른 경찰은 나를 넘어뜨리려고 발을 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무전을 쳐서 지원요청을 했다. 지원이 오면 힘들다는 생각에 권총을 잡고 그 경찰의 몸을 끌고 나르는데 (경찰이) 내 손목을 물었다. 통증 때문에 나도 귀와 어디 다른 곳을 물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주먹으로 경찰을 한대 쳤는데, 한대 맞고는 총만 주고 『그냥 가』라고 했다.
총을 바닥에 던지고 뛰는데, (경찰이) 쫓아오면서 총을 들고 안전장치를 푸는 것같았다. 5초후에는 나는 사정거리 밖에 있었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도피상황2 (99년 1월)익산역 근처에 있는 호프집에서 ○○(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6~7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다. 순간 형사들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신고를 한 것 같았다. 그들은 내게로 와서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들중 몇명은 점퍼 겉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는데, 총구의 형태가 드러나 있었고, 총구들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밖은 이미 포위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 때 형사들이 내게 윗옷을 벗어보라고 했다. 문신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파출소나 경찰서에 함께 가서 신원을 확인해 보자』고 했다.
역전파출소로 가는데 주위와 뒤는 경찰차와 형사들이 탄 승용차들이 포위해서 따라오고 있었다. 차가 파출소 현관문 앞에서 멈추고, 여러명의 형사들에게 둘러싸이고, 한 형사가 내 바지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팔을 뿌리치고 한 형사를 빠르게 밀치자 틈이 생겼다.
내가 막 뛰는데 『쏴라』는 소리가 들리고 여러군데서 쏘는 총성이 들렸다. 내가 뛰고 약 2초후에 총성이 들렸으니 대응이 빨랐다. 총을 피하기 위해 지그재그로 뛰는데, 앞에 창고같은 건물이 있었고, 우측으로 꺾어지는 모퉁이가 있었다. 그곳을 돌아 다음 담까지는 20~30미터.
그 담위로 몸을 던지는 순간 자동소총을 쏘는 듯한 총성이 연속으로 들렸다. 담을 넘어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철길 쪽으로 뛰는데, 창고를 돌아서 포위하려고 온 듯한 형사 2명이 사격을 해왔다. 그래서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려 빌라 쪽으로 가서 담위로 몸을 날리는 순간 7~8발의 총성이 더 들렸다. 나는 담을 넘어 빌라단지 안에 상의를 벗어놓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복수다짐
지금까지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내가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지금까지 사람을 해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내 목숨을 연장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전에 말했다. 내 가족과 내 여인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내가 만든 현실은 나하고 끝내자고. 그들은 내 경고와 부탁을 묵살하고 오히려 더한 고통을 주고있다.
나는 이제 그들이 말한 그대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 지금까지 내가 공격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반대가 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무엇에 의해서 죽게 되는지도 모르고 당할 것이다. 나는 한두번에 그들에게 희생된 수보다 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사용법을 알고 있다. 나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나는 어디가 급소이고,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 짐작하고 있다.
전쟁후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모르고 나는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제부터 나를 악마, 정신병자로 해도 좋다.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경찰과 정부에게도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망가지면 얼마만큼 망가질 수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 내가 악마가 되기를 바란다면.
◆본인에 대한 생각 이글을 쓰면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범죄자가 무슨 낯짝으로 이런 글을 쓰느냐고 해도 좋다. 나를 향한 모든 욕을 감사히 받아들이겠다. 나는 남자가 아니다. 나는 잡히지 않으려고 내 여자를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내가 남자라면 절대로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의적도 홍길동도 아니다. 그렇다고 경찰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은 아직까지는 아니다. 보통사람의 인간성을 100이라고 한다면, 아직까지 내게 1쯤은 남아있다. 나를 의적 영웅시하는 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들을 가치나 자격도 없다. 내가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벌써 인간이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자제를 하고 있는 것은 내 형제들과 아버지, 이 못난 놈에게 따스한 정을 줬고 내 인생을 측은히 생각해 준 ○○○, ○○○(동거녀인 듯)가 악마와 함께 살았던 여자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시각 모든 이들에게 법이 평등하게 적용·집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군사정권 이전부터 법의 형평성이 사라졌고,
법이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교도소에서 사형수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연민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새롭고 참된 인생을 한번 살고 싶다』고 갈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이들의 죄가 큰가, 아니면 전두환 노태우와 그들의 추종자들, 김현철 김영삼, 당시 권력의 수뇌부들의 죄가 더 무거운가. 과연 어느 누구에게 온정을 베풀어야 하나. 정치인들과 가진자들이 (교도소에서) 풀려나는 창구가 무엇인가. 바로 병보석, 형집행정지, 특별사면이다. 그들이 오늘 내일 할 정도로 병이 악화되어 풀려나는 것인가.
85년 인천소년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온실 담당 교도관-거구였다-이 재소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기합을 주면서 모두에게 입을 벌리라고 해놓고 자신의 가래침을 재소자 입안에 뱉었다. 또 재래식 화장실 뚜껑을 열고 그 안에다 모두 얼굴을 처박게 했다. 교도소가 너무 폐쇄돼 있다. 행형법에도 문제가 많다. 교도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수 없는데, 각종 비리와 가혹행위를 근절할 수 있겠는가. 교도행정이 바뀌고 교도관들이 재소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