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밀한 역사테오도르 젤딘 지음, 김태우 옮김
강, 640쪽, 2만 3,000원
역사 책이란 복잡한 사건들의 거대한 집합이다. 나라와 시대에 따라 셀 수조차 없는 많은 일들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한 데 모여 있다. 인도의 초대 총리를 지낸 네루가 옥중에서 딸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자상한 역사 책 「세계사 편력」, 르네상스와 근대 부르주아 시대의 풍속사를 꼼꼼하게 재현한 문명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도 이런 시간 개념에 따라 씌어진 점에는 차별이 없다. 대중 역사서로 인기 있는 「한 권으로 읽는…」식의 역사 요약본들도 체제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국의 역사학자 테오도르 젤딘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그는 사실을 있는대로 끌어 모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맞닥뜨린 인생의 문제를 역사에서 확인하고 해결하는데 도움 주기를 바랬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는 그렇게 해서 쓰여진 매우 새로운 개념의 역사 책이다.
모두 25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장(章)마다 살아있는 한 사람의 초상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대부분 여성. 그들의 인생은 불만과 후회로 가득 차 있거나, 욕망과 도피의 연속이다. 젤딘은 그 속에서 독자들도 자신의 일부를 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 책은 역사서치고는 특이하게도 고독, 호기심, 연민, 너그러움, 삶의 우울 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인생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보통 역사 책의 단골 메뉴인 노예제도, 권력, 전쟁도 거론한다. 그러나 그 문제의 출발은 역시 사람의 자잘한 고민이다. 인생의 문제는 「오래 전 잊혀진 어떤 근원에서 비롯한 마음가짐, 몸가짐에 구속받으며 우리 정신 속에는 서로 다른 세기에서 유래한 다양한 정신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 지은이 생각.
젤딘의 25가지 역사 이야기는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앙투아네트 푸크는 여성운동의 지도자. 하지만 그는 여성주의자(페미니스트)로 불리기를 거부하며 아주 독립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여성주의자로 활동하는 사람들과도 그는 싸운다. 인류의 「99%」가 적이다. 그런 다음 젤딘은 앙투아네트의 지독한 경멸과 혐오의 근원을 기원전 10세기 페르시아의 예언자 차라투스트라에게서 찾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역사에서 최초로 사탄이라는 다목적 희생양을 만든 사람. 많은 위대한 종교들이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뒤에 사탄이 숨어 있다고 생각케 하고, 그들과 싸우도록 만든 사람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해결책을 찾는다. 「대결의 역사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적들 사이의 침묵, 의사소통의 부재」이다. 서로 나약한 줄 몰랐기 때문에 적이 된 사람들은 분노나 증오의 감정밖에 나눌 수 없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 대한 주제별 기록이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만난 여성들의 삶을 기록하고, 논평을 짜나가는 방식은 박식한 한 역사가의 삶에 대한 명상에 가깝다. 삶이 안고 있는 고통의 뿌리를 폭 넓은 역사의 경험을 읽으면서 확인하고, 그래서 고민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도록 돕는다. 역사 책을 읽는 목적을 가장 철저하게, 그리고 명징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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